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씨가 한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커졌다.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전 세계 투자자들이 50조원 가량의 피해를 입은 가운데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힌 권씨는 한∙미 당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놓고 한국행(行)을 희망해왔다. 한국은 미국보다 경제사범에 대한 형량이 낮아서다.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은 1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권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항소법원은 판결문에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도형에 대해 한국으로의 약식 인도를 허용한 반면 미국의 범죄인도 요청은 기각했다”며 “이 결정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이) 항소하지 않았으므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1심은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미국 보다 순서상 먼저 도착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러한 점 등을 종합해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기각한 1심 판결은 그 이유가 명확하고 충분하며 2심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권씨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조만간 한국 송환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권씨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힌 이래 몬테네그로 당국 간 기싸움이 벌어지며 권씨에 대한 거취 판단은 1년 넘게 오락가락 바뀌었다.
몬테네그로 사법부는 권씨의 한국 송환을 주장한 반면,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이 미국행을 주장하며 대립해왔다.
하지만 밀로비치 장관이 지난달 25일 단행된 부분 개각을 통해 사실상 경질되면서 권씨의 한국행이 유력해졌다. 후임 법무부 장관이 권씨의 한국행에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항소법원이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명시한 만큼 새 장관이 법원과 또다시 대립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권씨는 지난 2월 1심을 담당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이 미국 인도를 결정하자 이에 항소한 바 있다. 한국행과 미국행 중 한국으로의 인도를 희망한 것이다.
권씨는 테라·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로, 해당 화폐의 폭락 위험성을 알고도 이를 숨긴 채 해당 화폐를 계속 발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2년 5월 가시화된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전 세계 투자자들의 피해액은 5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권씨는 테라·루나가 휴짓조각이 되기 직전인 2022년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와 세르비아를 거쳐 몬테네그로로 입국했고, 지난해 3월 현지 공항에서 UAE 두바이행 전세기에 탑승하려다 위조 여권이 발각돼 체포됐다.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은 권씨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외국인수용소로 이송됐다.
권씨의 한국 송환이 결정되면 미국으로 송환됐을 때보다 형량이 낮아질 전망이다. 한국의 경제사범 최고형량은 약 40년이지만, 개별 범죄마다 형을 합산∙처벌하는 미국에선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다. 미국 검찰은 지난해 권씨를 증권사기 등 8개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권씨와 그가 설립한 테라폼랩스에 대해 53억달러(7조30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해달라고 뉴욕 법원에 요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