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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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 회원국 된 독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독일인 간호사 잉게보르크 베스트팔 할머니는 젊은 시절 한국에서 6·25전쟁 부상자 등 치료에 헌신했다. 그가 속한 독일적십자병원은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5월 부산에 설치돼 이승만정부 말기인 1959년 3월까지 활동했다. 훗날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할머니는 “한국에 처음 갔을 때는 심각하고 비참한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우리 정부 초청으로 2000년대 한국을 방문한 뒤에는 “너무나 멋지게 발전해 내 기억 속에 있던 한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기뻐했다. 2022년 3월 그가 별세하자 주(駐)독일 한국대사관은 “6·25전쟁 중 맺은 대한민국과 독일 간의 우정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6·25전쟁 이후 부산에 들어선 독일적십자병원에서 의료진이 영아들을 돌보는 모습. 당시 병원에서 일한 잉게보르크 베스트팔 간호사가 기증한 사진이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6·25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1953년 4월 독일(당시 서독)은 유엔군을 이끌던 미국에 “야전병원을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상황이었다. 더욱이 전범국이란 이유로 유엔 회원국 지위조차 얻지 못 하고 있었다. 미국의 동의를 받긴 했으나 의료진 구성과 한국 파견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됐다. 독일적십자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휴전이 이뤄져 한반도 전역에서 총성과 포성이 사라진 뒤였다. 독일이 6·25전쟁 참전국 명단에서 제외된 이유다.

 

그래도 독일 의료진은 낯선 땅에서 최선을 다했다. 한국에 체류한 5년 가까운 기간 동안 입원 환자 2만여명과 외래환자 28만여명을 진료했다. 한국인 간호사를 비롯해 의료인 수십명을 양성한 것도 중요한 업적이었다. 그들이 임무를 마치고 독일로 돌아간 지 60년 가까이 지난 2018년 당시 문재인정부는 독일을 이탈리아·인도·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와 더불어 6·25전쟁 의료지원국에 포함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이로써 전란 당시 한국을 도운 참전국 또한 21개국에서 22개국으로 늘어났다. 6·25전쟁에 자국민이 참여해 피를 흘렸으나 참전국으로 분류되지는 않는 멕시코, 모로코 등도 독일처럼 늦게나마 참전국 인정을 받길 고대한다.

 

지난 7월10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양자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6·25전쟁 참전국 독일이 유엔군사령부의 정식 회원국으로도 가입했다.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양자회담에서 이 문제를 결론지은 것을 계기로 1일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이 방한했다. 그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의 유엔사 가입은 한반도 안정에 대한 독일의 의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연대의 신호”라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이 “독일이 유엔사 회원국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힌 것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나토 역내에서 미국에 이은 2위의 경제대국이자 유럽연합(EU)을 이끄는 강대국 독일이 한반도 안보에 기여하게 된 것은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과 러시아의 위협에 시달리는 한국으로선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라고 하겠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