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2024 파리 올림픽 육상 100m 결선이 열린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 트랙 6번 레인에는 세인트루시아를 대표한 쥘리앵 알프레드(23)가 출발 총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프레드의 조국 세인트루시아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로 인구는 18만명에 불과하다. 당연히 변변한 육상 훈련시설도 없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이날 유력 우승 후보인 미국 육상 스타 셔캐리 리처드슨(24)을 제치고 자신의 최고 기록인 10초72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의 금메달은 세인트루시아의 올림픽 첫 메달이다. 세인트루시아에서는 이번 올림픽에 선수 4명(육상 2, 요트 1, 수영 1)이 참가했다. 알프레드는 “세인트루시아에서 축제가 벌어질 것을 확신한다”며 벅찬 우승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신발도 없어 맨발로 교복을 입고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고 학창 시절을 회상했다.
세인트루시아 국민에게는 역사적인 순간을 선물했지만, 정작 자신을 육상선수로 키운 아버지가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에 알프레드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버지가 제 커리어 중 가장 큰 무대에 선 저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며 2013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금메달을 헌정했다.
지난달 29일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한국 최세빈을 꺾고 동메달을 따내 러시아와 3년째 전쟁 중인 조국에 이번 대회 첫 메달을 선사했던 우크라이나 ‘국민 검객’ 올하 하를란(33)은 단체전에서도 한국을 42-45로 꺾는 데 큰 역할을 하며 전쟁으로 지친 자국민들에게 대회 첫 금메달이라는 ‘희망의 승전보’를 전했다.
“로봇처럼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이번 올림픽 전략이었다는 하를란은 결승 마지막 주자로 한국의 전하영(22·서울시청)과 맞붙은 순간 더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랑팔레에 모인 많은 관중이 하를란과 그의 조국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를란은 “응원이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아름다운 파리,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하를란은 이로써 통산 6번째 메달을 획득하며 자국 역사상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올림픽에 140명, 역대 최소 규모 선수단으로 참가했다. 500명에 가까운 선수가 전쟁으로 사망한 탓이다.
하를란 역시 우여곡절 끝에 파리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그는 지난해 7월 세계선수권에서 러시아 선수를 만나 승리를 거뒀지만, 경기 후 악수 거부로 실격 처리돼 올림픽 출전 포인트를 따지 못했다.
다행히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예외적으로 하를란의 출전을 허용해 조국을 향해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