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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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 ‘둘레길 이름’ 쟁탈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1948년 정부 수립 후 한동안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인 동시에 경기도의 도청 소재지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서울이 행정구역상 경기도 경성부(京城府)였던 점과 무관치 않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미 군정 시절 서울은 특별시 지위를 얻으며 행정적으로 경기도와 완전히 분리됐다. 다만 경기도청은 딱히 옮길 데가 없어서 그랬는지 계속 서울에 남았다. 하긴, 고교 평준화 이전 서울에 있으면서 국내 최고 명문고로 꼽힌 학교 이름이 다름아닌 경기고(京畿高) 아니었던가. 1967년에야 수원에 경기도청 새 청사가 완공되며 비로소 경기도 도청 소재지가 서울에서 수원으로 바뀌었다.

‘서울둘레길’ 지도. 일부 구간이 서울과 경기도가 겹친다는 이유로 명칭을 놓고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 홈페이지 캡처

서울 강서구의 김포국제공항은 2001년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기 전까지 외국인들 사이에서 꽤 오랫동안 서울의 관문으로 통했다. 서울에 있는데 공항 이름에 왜 ‘김포’가 들어갔을까. 이 공항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일본군이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일대에 군용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이후 1960년대 초까지도 분명히 경기도 김포에 있는 김포공항이었다. 그러다가 1963년 김포군 양서면이 서울시에 편입됐다. 서울이 인근 경기도 땅을 빨아들이며 대도시로 성장하던 시절이었다. 당시만 해도 영등포구 관할이었다. 김포공항을 품은 강서구가 영등포구에서 분리돼 독립한 것은 1977년의 일이다.

 

박정희정부 말기인 1977년 경기도 과천 일대에 동물원과 식물원 등을 거느린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처음에는 서울 남쪽에 있는 공원이란 의미에서 ‘남(南)서울대공원’이란 명칭이 검토됐으나 곧 지금과 같은 서울대공원으로 변경됐다. 이처럼 행정구역상 경기도에 있지만 ‘서울’이란 이름이 붙고 또 서울시 산하 기관이 책임 지고 운영하는 곳으로 대공원 외에 서울시립승화원(고양) 등이 더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떼려야 뗼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서울 외곽을 둘러볼 수 있는 이른바 ‘서울둘레길’을 두고 서울시와 경기도 간에 충돌이 빚어졌다. 총 156.5㎞ 길이의 둘레길은 일부 구간이 서울 말고 경기도 땅과 겹치는데 서울둘레길이란 이름을 붙이는 건 부당하다는 경기도의 이의 제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울둘레길은 대부분 서울 안에 있지만 몇몇 짧은 구간이 인근 경기도의 고양, 광명, 안양, 하남, 구리 등을 지나게 돼 있다. 대한민국 수도로서의 상징성과 높은 세계적 인지도를 강조하는 서울시에 맞서 경기도는 “아무리 길이가 짧아도 경기도 땅”이라는 주장을 편다. 결국 중앙정부 부처인 행정안전부로 공이 넘어갔다. 어느 쪽도 기분이 상하지 않게 현명한 결론이 내려지길 고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