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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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에펠탑이 없는 파리?

19C 에펠탑, 흉측한 조형물 비난에 철거 위기
20C 방송 기능 더해 살아남아 도시 상징 우뚝

2024년 파리 올림픽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호불호의 다양한 반응을 낳았던 개막식부터, 환경을 생각하여 냉방 설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선수촌이나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채식 중심의 식단 등 파리 올림픽은 많은 뉴스를 만들어냈다. 나라별 메달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종목마다 새로운 스타를 매일 탄생시키고 있다.

매 순간 승패로 갈리는 환호와 실망의 감동 도가니에서 잠시 벗어나 긴 역사의 감회를 되씹는 매력도 쏠쏠하다. 올림픽이란 2000년도 넘는 과거에 고대 그리스인들이 즐기던 게임이다. 수천 년의 공백기 뒤에 근대 스포츠의 종주국 영국이나 올림픽의 조국 그리스에서 19세기 말 국제적으로 게임을 부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부활시킨 주인공은 영국이나 그리스가 아니라 프랑스의 피에르 쿠베르탱이라는 사람이다. 첫 올림픽 게임은 역사 기원을 존중하여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개최되었으나 이후 파리나 런던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도시를 돌아가면서 열리는 형식 덕분에 세계인의 축제로 발전했다.

시민이 결집하여 공동체를 만드는 전통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이 남겨준 유산이다. 에펠탑 아래 샹드마르스 광장은 프랑스 대혁명 첫돌을 맞아 1790년에 동맹축제가 열렸던 곳이다. 5만여 명의 관중 앞에서 각 지방 대표가 모여 프랑스라는 공동체 형성을 연출하는 정치적 행사의 장소였다. 왕이 아닌 대중이 나라를 만드는 새로운 정치논리가 등장한 것이다.

봉건제에서 벗어나 근대적 민족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정치 행사의 논리는 올림픽을 통해 현대 스포츠까지 확산했다. 올림픽 개막식이란 선수단이 차례로 입장하여 광장을 메우며 인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의식이다. 여기서 선수단은 행사의 주인공이자 관객이다. 왕과 귀족만이 주인공이었던 시대를 넘어 시민이 주인공과 관객을 겸하는 시대로 옮겨온 셈이다.

바로 동맹축제의 자리에 세운 상징물 에펠탑의 이야기도 독특하다. 왜 도시 한복판에 하늘로 치솟는 ‘무용지물 철탑’을 만들어 놓은 것일까. 에펠탑은 1889년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혁신적 예술작품이다. 프랑스의 전통적 노트르담 성당이나 루브르 왕궁이 모델이 아니고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을 모방한 것도 아니다.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는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기념탑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공화국 체제였으나 에펠탑은 보수적인 일부 엘리트의 취향은 아니었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측한 조형물이라며 철거를 주장했으니 말이다. 에펠탑은 20세기 들어 방송 기능을 더하면서 간신히 철거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파리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제는 에펠탑이 없는 파리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도시 정체성의 핵심이 되었다.

이처럼 에펠탑이야말로 역사적 감회의 매력 포인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나라의 주인이 왕이 아니고 일반 시민”이라는 주장이나, 고대 그리스의 신기한 행사를 현대 지구촌에 보편적으로 재현하겠다는 계획은 당시에는 모두 ‘황당한 미친 생각’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을 일상의 상식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올림픽, 에펠탑은 프랑스와 파리라는 배경에 아주 잘 어울리는 빛나는 별들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