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싱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선 김광선(플라이급)과 박시헌(라이트미들급)이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어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이후에도 한국은 2004 아테네 동메달 2개, 2008 베이징 동메달 1개, 2012 런던 은메달 1개 등 꾸준히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한국 복싱은 이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20 도쿄 대회에서 남자 선수들은 본선 무대를 밟지도 못했고, 여자 복싱에서만 페더급 임애지(25·화순군청)와 라이트급 오연지(33·울산광역시체육회)가 나서 모두 첫판에 탈락했다.
다시 올림픽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임애지가 투혼의 펀치로 한국 복싱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임애지는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여자 54㎏급 준결승전에서 하티제 아크바시(튀르키예)에게 2-3으로 아쉽게 판정패했지만 동메달을 가져왔다. 침체기를 겪던 한국 복싱에 12년 만의 올림픽 메달 선물이자 한국 여성 복서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남겼다.
임애지가 이날 펀치를 교환한 아크바시는 세계 챔피언 출신의 강적이다. 임애지는 자신과 같은 사우스포(왼손잡이)에 아웃복서이지만 키가 7㎝나 더 큰 아크바시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임애지는 ‘천재 복서’라 불리며 한국 복싱계의 미래로 꼽힌 기대주다. 임애지는 화순중 2학년 재학 시절 복싱에 뒤늦게 입문해 1년 만에 화순군수배 등 지역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무대를 넓힌 임애지는 2017년 세계여자유스복싱선수권대회서 한국 여자 복싱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대 중반인 그는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을 기약한다. 임애지는 “4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또 도전해서 메달을 따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임애지는 같은 체급 라이벌인 북한의 ‘복싱 영웅’ 방철미와 일화도 전했다. 두 선수는 올림픽 선수촌 웨이트장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방철미가 임애지에게 “파이팅하라”고 응원했고, 임애지도 “결승에서 만나자”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준결승에서 패해 동반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임애지는 끝으로 한국 복싱의 성장을 위해 전국체전에 체급이 더 신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전국체전에서 여자 복싱은 51㎏급, 60㎏급, 75㎏급 셋뿐이다. 임애지는 “중간 체급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는데 아직도 안 생겼다. 내 체급이 생겨서 그 대회에 출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임애지의 올림픽 메달 획득이 한국 복싱에 순풍을 일으키며 전성기를 다시 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