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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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명문대생 포함된 ‘마약동아리’ 충격, 비상 대책 강구해야

고급 호텔, 뮤직페스티벌 등지에서 집단으로 마약을 투약한 대학 연합동아리 회원 14명이 검찰에 적발되고, 이 중 6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서울대·고려대 등 수도권 주요 대학 학생들로, 의대 재입학 준비생, 로스쿨 준비생들도 포함됐다고 한다. 주범인 연합동아리 회장 A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젠 대학 캠퍼스에까지 마약 유통·투약이 횡행하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개탄스럽다.

이번 사건은 사회 지도층이 될 가능성이 큰 부유층 대학생들의 일탈이 어디까지 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A씨는 2021년 호텔, 고급 레스토랑 등에서 호화 술자리를 제공하는 수법으로 단기간에 300여명의 회원을 모집해 MDMA·LSD·케타민·사일로시빈, 필로폰·합성 대마 등 온갖 종류의 마약을 접하게 했다고 한다. 중독된 회원들에게는 텔레그램·암호화폐를 이용해 고가에 마약을 팔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남성회원들과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초대해 집단으로 마약을 투약했다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유사한 행태가 다른 대학에 없을지 의구심이 든다. 낱낱이 수사해 엄벌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마약 안전지대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서울 홍익대 주변에 마약 판매 광고가 마구 뿌려지고, 한 여중생이 마약투약을 하다 실신해 어머니가 신고하는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인천의 고 3학생 3명은 텔레그램을 통해 수억 원대의 필로폰을 구한 뒤 중간 판매책을 통해 유통하기도 했다. 특히 청소년과 20, 30대 등 젊은 마약사범이 전체의 절반을 넘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꺾지 못한다면 국가의 미래를 좀벌레가 파먹도록 방치하는 꼴이 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 대응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정부가 2022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일상 구석구석으로 침투하는 마약사범을 막는 데 역부족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국내 마약 인구를 약 100만명으로 추정하는데 수사기관에 적발된 마약사범은 2%도 안 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의 인지수사가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마약범죄 수사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보다 촘촘하고 빈틈없는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검찰과 경찰, 관세청 등으로 다원화된 마약 수사 체제를 ‘마약수사청’ 설립을 통해 일원화하는 등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