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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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경쟁·협회 지원·극한 훈련의 힘… ‘양궁 신화’를 쏘다 [파리 2024]

한국 金 5개 ‘싹쓸이’ 비결은

통산 5관왕 김우진 ‘공정 선발’ 첫손 꼽아
임시현 “하루 500발 쏴” 혹독한 연습 강조

현대차 그룹의 아낌 없는 지원도 한몫
진천에 파리 현장 구현… 강가 훈련도
선수·코칭스태프·협회 ‘삼위일체’ 빛나

한국 양궁은 2024 파리 올림픽 전 종목 금메달을 모두 싹쓸이하며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마무리했다.

역대 최고 성적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한국 양궁은 전 종목 석권의 쾌거를 이룩했지만, 당시는 혼성 단체전이 신설되기 전이라 금메달이 4개였다. 이로써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한국 양궁은 통산 금메달 3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로 누적 메달 50개를 채웠다.

김우진(왼쪽)과 임시현

특히 금메달 5개 싹쓸이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결과다. 당초 대한양궁협회는 파리에서 3∼4개의 금메달을 예상했다. 올림픽 경험이 전무한 여자 대표팀의 면면에다 중국이나 프랑스 등 신흥 강국들의 비약적인 기량 향상이 이런 전망을 하게 했다. 그러나 태극궁사들은 압도적인 기량으로 전망을 넘어섰다.

한국 양궁이 강한 이유에 대해 대표팀 선수들이 첫손에 꼽는 비결은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가장 뛰어난 선수를 선발한다’는 대원칙 아래 진행되는 공정한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이다. 2024 파리 3관왕을 통해 개인 통산 올림픽 금메달 5개를 보유하며 명실상부 양궁의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선수)에 등극한 김우진은 “대한양궁협회는 어느 선수나 선발전을 통해 국가대표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공정하고 클린한 과정을 통해 과거 실적이나 이력 등의 계급장을 떼고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다”면서 “초, 중,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교와 실업팀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준 것 자체가 한국 양궁이 최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세계 최고의 코칭스태프들이 국제경쟁력을 갖춘 선수로 성장시키는 체계적인 지도와 이에 적응하기 위한 선수들의 한계를 초월한 훈련량도 한몫한다. 올해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이번 올림픽에 출전해 여자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따낸 남수현(19·화순시청)은 “대표팀에 들어와 장비부터 자세까지 모두 바꿨다. 양창훈 감독님 말씀으로는 제가 대표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중학생 수준의 자세였는데, 이제는 실업팀 자세라더라. 새로운 장비와 자세에 적응하기 위해 많게는 하루에 600발의 화살을 쐈다”고 말했다. 여자 양궁 3관왕 임시현(21·한국체대)도 “하루에 최소 500발을 쐈다. 올림픽 전까지 쏜 화살을 세면 수백만은 될 것이다. 이제 잠을 좀 자고 푹 쉬고 싶다”고 할 정도로 양궁 대표팀의 훈련량은 고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겸 대한양궁협회 회장이 4일 오후(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양궁 대표팀과 '5개 전 종목 금메달'을 기념하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제덕, 이우석, 김우진, 정 회장, 전훈영, 임시현, 남수현. 대한양궁협회 제공

정의선 회장이 대한양궁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무한한 지원은 선수들이 오롯이 양궁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줬다. 대표적으로 대한양궁협회는 진천선수촌에 파리 레쟁발리드 양궁 경기장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세트’를 설치했다. 간판, 대형 전광판 등 구조물은 물론이요, 경기장 출입구에서 사대, 인터뷰 공간까지 동선을 실제와 똑같이 만들고 장내 아나운서 코멘트, 관중의 환호성에 소음까지 프랑스어와 영어로 틀어 현장감을 높였다. 센강변 레쟁발리드의 까다로운 강바람에도 대비해 경기 여주 남한강변에서 300m 떨어진 곳에 훈련장을 마련해 사흘간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양궁협회는 파리 현장에서도 선수 지원에 온 힘을 쏟았다. 선수촌과 경기장까지 극악의 이동 환경을 고려해 레쟁발리드 근처 2분 거리의 호텔에 방 6개와 2층 라운지를 통째로 빌려 휴게 공간까지 마련했다. 그야말로 선수와 코칭스태프, 양궁협회가 ‘삼위일체’가 되었기에 파리 올림픽 전 종목 석권이 가능했던 셈이다.


파리=남정훈 기자, 백소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