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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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 총리, 반정부 시위 격화에 사임… 인도로 도피

공직 할당제 반대 시위 중 유혈사태
대학생·경찰 등 사망자 300여명 발생
외신 “軍헬기로 출국… 다음 목적지는 英”
장기 집권 종식… 과도정부 구성 예정
軍 “이제 폭력 멈춰야 할 때” 자제 촉구

방글라데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자 장기 집권 중인 셰이크 하시나(사진)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했다. 공직 할당제에 반대하며 구직난에 시달리던 대학생을 중심으로 발생한 시위에서 3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유혈 사태가 악화하자 결국 정권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와커 우즈 자만 육군 참모총장은 하시나 총리가 사임했다며 과도 정부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영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국가는 많은 고통을 겪었고 경제적 타격을 입었으며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서 “이제 폭력을 멈춰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환호하는 시위대 5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가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사퇴 소식에 기뻐하며 환호하고 있다. 다카=AP연합뉴스

외신에 따르면 하시나 총리는 수도 다카에 있는 대통령 관저를 빠져나와 군 헬기를 타고 인도로 도피했다. 로이터통신과 인도 현지 매체인 인디아투데이는 “하시나 총리가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가지아바드의 힌돈 공군기지에 착륙했다”고 보도했으며, 인도 CNN뉴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하시나 총리가 “(영국) 런던으로 향하기 전 인도에 착륙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음 목적지는 런던이라고 설명했다.

 

외신에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방글라데시군은 2007년 대규모 불안 사태가 확대되자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2년 동안 군이 지원하는 과도 정부를 세운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육군 참모총장은 “상황이 나아지면 비상사태를 선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시위는 정부가 독립유공자 자녀에게 공직 30%를 할당하는 공직 할당제를 추진하며 촉발됐다. 공직 할당제는 반대 여론에 2018년 폐지됐지만 지난 6월 고등법원이 정책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며 부활했다. 이에 분노한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왔고, 시위는 시위대와 경찰, 친정부 활동가들이 충돌하며 폭력 사태로 번졌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지난 3일 셰이크 하시나 총리와 그의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P뉴시스

정부는 무력, 통행금지, 인터넷 차단 등으로 시위대를 압박했지만 시위대는 하시나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며 반발했고,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맞서면서 약 2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대법원이 독립유공자 자녀의 공직 할당 규모를 5%로 완화한 절충안을 내놓으면서 시위도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시위대가 요구한 시위 체포자 석방과 하시나 총리 사과 등이 수용되지 않자 다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지난 4일에만 1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다.

 

사임 소식에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시위대는 통행 금지령에도 관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방글라데시 방송 채널 24에는 관저 앞에서 손을 흔들며 기뻐하는 시위대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 아버지’로 여겨지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1920∼1975)의 장녀인 하시나 총리는 반독재 투쟁과 투옥 등을 거쳐 1996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집권, 2001년 7월까지 총리직을 수행했다. 이후 경제 파탄과 부정부패 등으로 실각했고 절치부심 끝에 2008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 2009년 1월부터 총리를 맡았다.


이민경 기자 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