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자를 판독해내는 시간이 경기 시간의 3배였다.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승선을 가장 먼저 나란히 통과한 노아 라일스(27·미국)와 키셰인 톰프슨(23·자메이카)은 환호는커녕 초조함이 가득 찬 눈으로 전광판만 간절히 바라봤다.
9초79로 소수점 두 자리까지 같은 둘의 기록을 소수점 세 자리까지 계측하는 데는 기록의 3배에 달하는 28초가 걸렸다. 억겁 같은 기다림의 시간, 라일스는 톰프슨에게 말했다. “네가 이긴 것 같아.” 톰프슨은 70m 구간까지 선두로 달렸다.
그러나 승자는 라일스였다. 9초784 대 9초789. 라일스는 0.005초 차이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에 등극, 미국에 20년 만의 육상 남자 100m 금메달을 안겼다.
◆막판 가속으로 개인 최고 기록 달성
그 누구도 우승자를 확신하기 어려웠다. 육상 황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의 은퇴 이후 단거리 왕좌는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볼트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여러 신성이 다퉜지만, 압도적 기량을 뽐내는 이는 없었다.
올해 9초77의 100m 최고 기록을 가진 4번 레인의 톰프슨, 스타트가 빠른 3번 레인의 프레드 컬리(29·미국), 2020 도쿄 올림픽 100m 챔피언인 9번 레인의 마셀 제이컵스(30·이탈리아)까지 그 누가 우승해도 이변이 아닌 상황.
라일스는 스타트가 제일 늦었다. 컬리가 0.108초로 가장 빨랐고, 제이컵스가 두 번째로 빠르게 튀어나갔다. 30m 구간부터는 톰프슨이 앞서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라일스는 꼴찌로 달렸다.
200m가 주종목인 라일스의 스퍼트는 60m 구간부터 빛을 발했다. 이 구간부터 3위로 치고 올라와 70m 구간에서 톰프슨을 바짝 따라붙은 끝에 개인 최고 기록으로 올림픽 결승선을 통과했다.
쇼맨십에 강한 라일스는 자신의 이름이 전광판에 뜨자 가슴팍에 붙은 이름표를 거칠게 떼어낸 뒤 관중을 향해 들어 보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저스틴 개틀린 이후 끊겨버린 100m 금메달을 염원했던 수만 명의 미국 관중이 환호했다. 컬리도 9초81의 기록으로 미국에 동메달을 추가했다.
◆볼트 이어 8년 만의 단거리 2관왕 나오나
라일스는 육상 선수 부모를 둔 ‘천재형’ 스프린터다. 하지만 그는 평생을 투병하며 살아왔다.
라일스는 우승 확정 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는 소아천식, 여러 종류의 민감한 신체반응, 난독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을 앓았거나 앓고 있다”고 고백한 뒤 “한계를 설정하지 말라. 나도 해냈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라일스가 세계 최정상에 서기까지는 이혼 후 형제를 홀로 키운 어머니의 헌신이 있었다. “어머니와의 대화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라일스는 이날도 금메달이 확정된 후 어머니에게 달려가 기쁨을 만끽했다.
‘차세대 볼트’에 한 발짝 더 다가간 라일스의 끝나지 않은 올림픽 도전기에 더욱 많은 관심이 쏠린다. 9일 열리는 200m 결선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면 볼트 이후 8년 만의 올림픽 단거리 2관왕 탄생이다. 400m, 1600m 계주에서도 우승할 경우 볼트도 이루지 못한 올림픽 4관왕의 위업을 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