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이 서는 날 방문한 천안시 병천의 순댓국집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내로라하는 많은 순댓국집 사이에서도 빛나는 ‘아우내 엄나무 순대’는 양도, 맛도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음식점이다
◆병천 아우내 엄나무 순대
순댓국은 정말 친근한 메뉴다. 서울 태생인 내게 아마 인생 첫 국밥도 순댓국이 아니었을까 싶다. 막 학교에 들어갔을 어린 시절 어머니를 졸라 순댓국밥을 배달시켜 먹을 때면 2인분을 시켜 나와 동생, 어머니 이렇게 세 그릇으로 나누어 먹었다. 나와 동생에게는 고기와 국물을 가득 덜어주고는 당신 그릇엔 뜨거운 물을 부어 양을 늘리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부엌이 밖에 있던 옛날 집 툇마루에 앉아 토요일 햇살을 받으며 오손도손 먹던 그 순댓국밥의 맛이 종종 그립다. 집 앞의 순댓국집은 아직도 영업한다. 문을 연 지 35년이 지났고 그 사이에 주인이 두 차례 바뀌었다. 35년 세월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주인이 바뀐 만큼 변해버린 그 맛에 아쉬움을 표현한다. 그만큼 순댓국은 쉽사리 단골 가게를 바꾸기가 힘든 그런 음식이다.
예전엔 새벽 내내 문을 여는 순댓국집들이 많아서 일이 늦게 끝나는 날에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순댓국에 소주 한잔 걸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런 20대의 추억은 밥 한 공기를 다 말아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아저씨가 돼버린 지금에서야 참 소중하게 다가온다. 대학교 다닐 때에 학교 앞에 병천 순댓국집이 있었다. 순댓국을 좋아하는 내게는 학창시절 자주 찾던 단골집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병천 순댓국이 순대가 좀 토실토실하게 들어간 그저 어느 지역 지명을 딴 순댓국집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 병천이 순댓국의 성지였다는 건 몇 년 전 병천에 출장가면서 알게 됐다. 마침 오일장이 열리던 병천 읍내는 대로변에 즐비한 순댓국집들과 순댓국집마다 줄을 선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일장이 열리던 날엔 차마 음식점을 찾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미팅시간이 촉박해 긴 줄을 설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음날 병천 순대를 맛보기로 했다. 차를 타고 병천 읍내를 둘러보며 전날 미리 추천받은 순댓국집을 찾아가는 길이 참 즐거웠다. 아우내 엄나무 순대는 병천의 순댓국집들 사이에서도 맛집으로 사랑받고 있었다. 가게는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했는데, 빠르게 원상 복귀하는 테이블의 자태에서 잘 찾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 주문하고 둘러보니 사방에 유명인들의 사인이 붙어있어 기대감을 잔뜩 높였다.
◆병천 순댓국의 맛
일반 순댓국보다 1000원이 비싼 얼큰 순댓국을 주문했는데 보글거리는 뚝배기 위에 듬뿍 올린 깻잎향이 아찔하게 다가왔다. 식탁에 준비된 들깻가루를 굳이 넣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깻잎의 향은 순댓국이 뚝배기에서 끓으며 올라오는 자글거리는 향과 함께 멋진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함께 나온 새우젓을 넣지 않아도 될 만큼 순댓국의 간은 절묘했다. 얼큰하지만 맵지 않은 그 칼칼한 맛이 속을 시원하게 풀어 주었다.
아우내 엄나무 순대의 순대는 고소한 선지와 야채가 오동통하게 들어간 병천 순대인데 뚝배기에 있는 순대만 건져 먹어도 속이 든든해질 정도로 넉넉하게 들어있다. 고기 건더기가 더 많은 듯한데 고기마다 어찌나 잘 삶아 냈는지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공존해 먹는 내내 즐거움을 준다. 직접 담근 김치와 깍두기에 버무려진 고춧가루의 자태는 빛이 나는 듯했다. 반 정도는 순대와 국, 고기 자체의 맛을 즐기고 난 후 어느 정도 식은 밥을 국에 말았다. 하얀 밥알이 진득한 국물을 머금으며 탄수화물이 낼 수 있는 단맛이 입안에 퍼져 올라오는데 그 한입 가득 넣은 국밥을 씹으며 ‘아 이 뚝배기는 국물 한 방울 남기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에 이 가게가 있었다면 정말 다이어트 같은 건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릇을 비어갔다.
◆순대와 소시지
순대는 우리의 고유 음식으로 돼지의 창자에 당면, 선지, 채소들의 재료를 넣고 찐 요리다. 학교 앞 분식점의 간식으로도, 회사 앞 순댓국집 식사메뉴로도 널리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음식이다. 순대는 원래는 귀한 식재료인 고기와 찹쌀 같은 재료들을 넣은 잔치 음식 중 하나였는데 1970년대에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당면 순대가 개발되면서 더 대중적으로 사랑받게 되었다.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순대가 있다. 경기도의 맛이 담백하고 소가 튼실하게 들어간 백암순대, 선지·채소·찹쌀로 속을 채워 고소하고 진득한 맛이 강한 병천순대, 돼지 창자 대신에 오징어를 활용한 강릉 오징어순대 등이다. 이렇게 동물의 내장에 재료를 채워 굽거나 찐 요리들은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 영국의 블랙푸딩이나 독일의 부어스트, 프랑스의 앙두예트 등이 있는데 우리가 아는 소시지 이름들이다. 거기에 더해 소시지를 말리거나 발효해 다양하게 응용하기도 한다.
■소시지를 올린 토마토 스파게티 만들기
재료= 소시지 1개, 토마토 소스 150g, 면수 100㎖, 스파게티면 150g, 가루 파르메산 치즈 15g, 토마토케첩 30g, 설탕 1ts, 그라나파다노 치즈 5g,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15㎖, 마늘 3개, 버터 1Ts
만드는 법= ① 팬에 버터를 두르고 소시지와 편썬 마늘을 볶아준다. ② 소시지가 노릇하게 익으면 면수와 토마토 소스, 케첩, 설탕을 넣고 끓여준다. ③ 스파게티면을 넣어준 후 버무려 가며 익혀준 후 가루 파르메산 치즈를 넣어준다. ④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뿌려 준 후 접시에 담고 그라나파다노 치즈를 뿌려준다.
김동기 다이닝 주연 오너 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