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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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흑인 병사 첫 명예훈장 주인공 톰슨 74주기

낙동강 방어선 전투 때 23세 나이로 전사
기관총 사수 맡아 퇴각하는 소대원 엄호

미국 국방부가 6·25전쟁 당시 한국에서 용맹하게 싸운 공로로 명예훈장(Medal of Honor)이 수여된 윌리엄 헨리 톰슨(당시 23세) 일병의 전사 74주기를 맞아 그 사연을 소개해 눈길을 끈다. 명예훈장은 미국에서 군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에 해당한다. 톰슨은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병들 중 흑인으로는 처음 명예훈장을 받았다.

 

미 육군 25사단 24연대 소속 윌리엄 헨리 톰슨(1927∼1950) 일병.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투입돼 큰 공을 세웠다. 전사 후 명예훈장이 추서됐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5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는 톰슨의 활약상을 알리는 장문의 글이 게재됐다. 1927년 8월 뉴욕에서 태어난 톰슨은 고교를 중퇴하고 18살 나이에 미 육군에 입대했다. 미혼모의 아들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자랐다는 것 말고는 톰슨의 어린 시절에 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톰슨이 입대한 1945년 10월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였다. 기본 군사훈련을 마치고 알래스카주(州)에 주둔한 부대에 배치된 그는 나중에 제6보병사단으로 전출됐다. 당시 6사단은 일본의 패전 후 한반도 점령 임무를 맡고 있었다. 6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해 미 본토로 귀환할 때 톰슨은 다시 일본에 있던 제25보병사단으로 보내졌다.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일본 점령 임무를 맡고 있던 25사단 24보병연대는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미군 부대라는 이유로 제일 먼저 한국으로 이동했다. 톰슨은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이 북한군한테 일방적으로 밀리던 1950년 7월22일 경북 상주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 처음 투입됐다. 얼마 후 낙동강 방어선이 형성되고 톰슨의 부대는 경남 함안 지역에서 북한군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가 부여됐다.

 

1950년 8월6일 톰슨이 속한 소대가 방어하던 지점을 향해 북한군의 공격이 집중됐다.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고 수류탄이 곳곳에 떨어지는 가운데 톰슨은 기관총 사수를 자임하고 나섰다. 소대에 2개뿐인 기관총 중 다른 하나를 담당하던 병사는 이미 전사했다. 중과부적임을 깨달은 미군 지휘부는 톰슨의 소대에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톰슨은 자신이 기관총을 쏘며 끝까지 버티겠다고 제안했다. 만류하는 소대장을 향해 톰슨은 “중위님, 여기서 나가세요. 제가 중위님을 엄호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그게 전우들이 목격한 톰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며칠 후 톰슨의 시신이 미군 병사들에 의해 수습됐다. 톰슨은 그가 최후까지 기관총으로 사살한 북한군 병사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이듬해인 1951년 6월 미 행정부는 톰슨의 용기와 희생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세상을 떠나고 없는 톰슨을 대신해 어머니가 미군 합참의장 오마 브래들리 원수가 수여하는 훈장 메달을 받았다. 톰슨은 고향인 뉴욕 롱아일랜드 국립묘지에 묻혔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