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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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 ‘필리핀 이모’들 “주변서 부러워해”… ‘역할’ 우려 여전 [뉴스+]

시범사업참여 가사관리사 100명 입국

대학 학위에 영어 능통·한국어도 구사
4주 교육 후 서비스 이용 가정에 배치
하루에 4시간 이용시 비용 月119만원
韓에 대한 애정·서울생활 기대감 밝혀
일각 업무범위 둘러싼 혼란 등 꼬집어
이유식 조리는 되고 요리는 안 된다고
가사·돌봄업무 경계 모호성 문제 거론
인권 침해·내국인 일자리 등도 지적돼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서 가족을 돕고, 대학원도 가고 싶어요.”

 

서울시와 정부가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돌봄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인 100명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오전 7시30분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한 글로리 마시나그(32·여)씨는 “한국 문화를 많이 알고 싶어서 왔다”며 이 같이 밝혔다. 그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가 정착된 곳이 아닌, 서울을 택한 이유에 대해선 “한국을 너무 좋아해 선택했다“며 “주변에서 많이 부러워 했다. 한국에 많이들 오고 싶어 한다”고 답했다.

6일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글로리 마시나그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인천공항=공항사진기자단

시와 고용노동부는 고령화로 내국인 가사근로자가 줄어들고, 인건비가 꾸준히 높아지면서 맞벌이 가구 등의 육아 부담이 커지자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날 입국한 필리핀인 100명은 해당 제도로 국내에 처음 들어온 가사관리사들이다. 필리핀을 상징하는 색인 파란색 단체복을 맞춰 입은 가사관리사들은 새벽 비행으로 인한 피로도 잊은 채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이들은 취재진에게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다른 내·외국인 여객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이날부터 4주간 특화교육을 받은 뒤 다음 달 3일부터 6개월 동안 서울시내 각 가정에서 가사와 아동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입국 전 필리핀 직업훈련원에서 780시간 이상의 교육을 이수하고, 정부 인증자격증을 취득했다. 건강검진과 마약·범죄 이력 등 신원 검증도 거쳤다. 24∼38세 여성인 이들은 영어가 유창하고 일정 수준의 한국어도 할 수 있다. 대부분 4년제 대학 학위를 갖고 있는 등 현지에선 ‘고급 인력’으로 분류된다고 시는 전했다. 글로리씨는 대학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다고 한다.

 

서비스 이용 가정은 지난달 17일부터 모집해 이날 오후 6시 마감됐다. 시에 따르면 최종 751가구가 신청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가구 중 12세 이하 자녀(2011년 7월18일 이후 출생아)가 있거나 출산 예정인 가구가 대상이다. 별도의 소득 기준은 없으며, 한부모·다자녀·맞벌이·임신부가 있는 가정 순으로 우선 선발한다. 시는 자녀 나이, 희망하는 이용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용 가정을 선정할 방침이다.

 

가사관리사 이용 비용은 시간당 최저임금(올해 9860원)과 4대 사회보험 등을 포함해 하루 4시간 이용시 월 119만원 수준이다. 월~금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시간제(4, 6시간)와 종일제(8시간) 중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주 근로시간은 법에 따라 52시간을 넘길 수 없고, 통근형만 가능하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노동자들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다만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업무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나 인권 침해 우려 등은 여전하다. 서비스 이용 신청을 하는 2개의 앱(어플리케이션) 중 하나인 ‘대리주부’를 보면 이들이 할 수 있는 업무와 할 수 없는 업무 범위가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다. 일례로 아기 이유식 조리는 가능하지만, 어른 음식 조리는 할 수 없다. 마대걸레로 바닥을 청소할 수는 있으나, 손걸레질은 업무 범위 밖의 일이다. 이처럼 가사·돌봄 업무의 경계가 모호한 탓에 각 가정에서 가사관리사와 갈등을 빚게 되거나 인권 침해 논란이 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밖에 외국인 가사관리사 수요가 비용 때문이 아니라 자녀의 영어교육 효과를 기대하는 정서 탓에 높게 나타난다는 비판, 내국인 고령층 여성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 등도 꾸준하다. 진보당 이미선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시범사업이 부디 국가의 위상까지 떨어뜨리는 외교적 문제로 확산하지 않도록 이주노동자의 인권 보장과 노동권 차별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