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개원 두 달 동안 최악의 성적표를 쓰고 있다.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법안은 방송4법과 민생위기특별법 등 6건이지만 여야 합의가 아닌 거대야당의 일방처리다. 해병대원 특검법은 재표결 끝에 폐기됐고, 나머지 법은 모두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유력하다. 합의 처리된 민생법안은 ‘제로(0)’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식물 국회의 반복이다.
두 달간 1200억원이라는 혈세를 쓰고도 소모적 공방만 벌인 ‘생산성 제로’ 국회다. 일반 기업이면 벌써 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탄핵·특검 강행 처리→거부권→폐기’라는 도돌이표에 국민은 지친다. ‘협치’, ‘합의’라는 단어를 들어본 지가 오래다. 이런 한심한 국회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주호영 국회부의장까지 “바보들의 행진”, “증오의 굿판”이라고 질타했겠나.
‘국민은 투표할 때만 왕이고, 투표 후에는 4년간 노예로 산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가 대의민주주의를 가장한 현실 정치를 신랄하게 꼬집은 말이다. 작금의 대한민국 국회와 딱 들어맞는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에게 표를 읍소하던 이들은 온데간데없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확증편향이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하도록 눈과 귀를 막고 있다.
나쁜 정치는 우리 사회의 통합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지난해 6∼8월 19∼75세 남녀 3950명을 대상으로 한 ‘2023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 나온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보수(59%)·진보(55.4%) 가릴 것 없이 절반 넘게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눈을 의심했지만 사실이다.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들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여서 심각성을 더한다.
응답자들이 꼽은 사회 갈등 요인 가운데 압도적 1위(92.3%)는 ‘진보·보수 갈등’이다. 2018년 87.5%보다 5.3%포인트 상승했다. 심지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은 친구·지인이라도 ‘다른 진영 사람과는 술자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정치 양극화를 부추겨 사회 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후진정치가 빚어낸 괴물이다.
루소는 “좋은 정치가 좋은 시민을 만들고 나쁜 정치가 사나운 시민을 만든다”고 했다. 물론 루소의 말처럼 정치 성향만 갖고 ‘좋은 시민’과 ‘사나운 시민’을 구분할 수는 없다. 다만 망국병으로 불리는 지역감정 극복도 버거운 판에 정치가 불러온 진영 대립이 우리 사회를 분열로 내몰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 지경까지 내몰렸을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이 가장 못 믿는 기관·단체는 단연 국회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21.1%에 그쳤다. 74.1%의 국민에게 국회(정치)는 불신의 대상이다. 압도적 최하위다.
정치가 민생을 외면하고 갈등과 분열을 부추긴 것은 오래된 일이다. 강성 지지층들은 팬덤이라는 미명 아래 의견이 다른 집단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그러면서 직접민주주의이자 당내 민주주의라고 강변한다. 정치권은 이런 갈등을 중재하거나 자중시키기는커녕 지지세력 구축에 적극 활용한다.
176석 거대 야당은 대통령을 무력화시키고 꼬투리 잡아 탄핵하려는 집단최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 회초리를 맞은 소수 여당도 존재감은 사라진 채 집단 무기력에 빠져 있다. 이런 정치판에서 건전한 대의민주주의는 언감생심이고 민생은 뒷전이다.
‘예기(禮記)’에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라는 말이 있다. 혹독한 정치가 백성에게 미치는 해악을 경고한 것이다. 정치 양극화로 인한 사회분열의 폐해는 심각하다. 총칼만 안 들었을 뿐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상대방을 끝까지 짓밟는다. 사회적 갈등을 용광로처럼 녹여내 사회 통합을 이뤄내는 게 정치 본연의 역할이다. 그런데도 정치가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국민만 바라보면 되는 쉬운 일을 하지 못하는 정치가 참으로 한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