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전역에서 극우세력에 의한 반이민·반이슬람 폭력 시위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키어 스타머 정부가 가짜뉴스를 무분별하게 유통해 폭력 사태를 부추긴 것으로 지목받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상대로 칼을 빼들었다. 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SNS와 가짜뉴스가 극우 폭력 사태의 증폭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들여다보는 중이다. 국내 극우 세력이 거대기술(빅테크) 기업들이 운영하는 SNS를 통해 어떻게 허위정보를 퍼뜨렸는지가 핵심 내용으로 ‘국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지도 조사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극우 폭력 시위는 지난달 29일 리버풀 인근 사우스포트의 어린이 댄스 교실에서 흉기 공격이 발생해 어린이 3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뒤 용의자로 체포된 17세 남자가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SNS에서 확산하며 시작됐다. 용의자는 웨일스 카디프 태생으로 부모가 르완다 출신이고 이슬람과 관련성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시위대는 극우 활동가들의 계정과 SNS의 추천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한 정보를 바탕으로 무분별하게 이슬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중이다. 특히, 허위정보가 러시아와 연계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온라인 뉴스 매체에 실리면서 더욱 퍼져 타국가의 개입 여부까지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가짜 정보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SNS 운영 기업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스타머 총리도 시위가 본격화된 직후인 1일 기자회견에서 빅테크 기업들을 향해 “폭력 소요가 분명히 온라인에서 부추겨졌다. 이 또한 범죄이고 이는 당신의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베트 쿠퍼 내무장관도 지난 5일 BBC 라디오에 출연해 “SNS 기업들 또한 이 사태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면서 경찰이 “온라인 범죄성”을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 시위가 쉽게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가짜뉴스의 확산을 방치한 SNS 기업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쿠퍼 장관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온라인 허위정보 근절을 위한 법적 틀을 만드는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지적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SNS에 대한 한층 더 강한 규제가 논의될 가능성도 커졌다.
초기 시위를 조직하는 데 사용된 웹사이트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라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영국 내 반유대주의 모니터링 시민단체인 시큐리티 트러스트(CTS)에 따르면 폭동으로 번진 사우스포트에서의 첫 시위를 조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웹사이트를 신나치주의자로 의심되는 인물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스티븐 파킨슨 검찰청 청장은 이날 BBC 방송에 “이념을 전개하려는 목적으로 활동을 계획하는 조직이 대단히 심각한 혼란을 계획한다면 우리는 테러 혐의를 고려할 것”이라면서 특정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 시위를 조장하는 세력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가짜뉴스를 만들고 확산한 웹사이트와 SNS에 대한 조사와 제재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폭력시위는 잦아들지 않고 일파만파로 확산하는 상황이다. 극우 시위대가 망명 신청을 지원하는 영국 전역의 법률 센터 수십 곳을 공격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고 영국 더타임스가 보도하기도 했다.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에 공격 대상 리스트가 게재됐는데 경찰은 이 중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소 30곳을 파악해 경찰 6000명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가짜뉴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폭력시위 사태는 사실관계 내지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은 단계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리비아 브라운 배스대 교수는 FT에 현재 온라인 정보는 “진짜 계정인지 봇인지, 정말로 국가 행위자인지 구별하기가 불가능한 상태”라며 “우리가 아는 것은 온라인에서 상호작용 행위가 오프라인에서 개인이 행동하도록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