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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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한 하반기 자본시장 [더 나은 경제, SDGs]

지난 6월18일(현지시간) 나스닥에 상장된 엔비디아의 주가는 종가 기준 135.58달러에 이르러 시가총액 3조3350억달러(약 4609조원)을 기록했었다. 엔비디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지 않은 지난 주말 정보기술(IT)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갑자기 엔비디아가 지난 3월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GTC) 2024’에서 공개한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블랙웰 B200’의 출시를 최소 3개월 이상 늦출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를 위탁 생산하는 대만 파운드리 기업 TSMC와의 시험 과정에서 설계 결함이 발견된 여파로 전해졌다.

 

AP연합뉴스

이에 존 리조 엔비디아 대변인은 즉시 이메일 성명을 통해 “연말을 목표로 생산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차세대 AI 칩 블랙웰 B200 칩 생산과 관련해서는 “하반기에 늘어날 것이고 그 밖의 다른 소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블랙웰B200을 수백억달러(수십조원)어치 주문한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주변에서는 엔비디아의 생산 지연을 걱정하는 투자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 지연이 사실이든, 소문이든 최근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 빅테크가 실적 부진에 시달리면서 리스크도 점차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최근 미국 법무부는 엔비디아가 클라우드 기업들에 자사 제품을 구매하도록 강제적인 압력을 가했는지, 반독점법 위반 사안을 살펴보는 중이다. 이 조사는 AMD를 비롯한 경쟁업체의 신고로 촉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이미 유럽연합(EU)에서 반독점법 제제 리스크를 안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지난해 9월부터 엔비디아의 법 저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래픽처리장치(GPU) 부문에서 잠재적으로 남용될 수 있는 관행에 대해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달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가 법 위반으로 제재할 예정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기도 했다.

 

비단 엔비디아뿐 아니라 주요 빅테크의 실적이 공개된 지난주 ‘슈퍼 위크’ 기간 애플을 빼고 받아든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지난 2일(현지시간) 뉴욕 주식시장에서 빅테크 주가는 하락세를 대부분 기록했는데, MS(-2.07%), 엔비디아(-1.78%), 알파벳A(구글 모회사·-2.40%), 메타(-1.93%), 테슬라(-4.24%) 등이 하락했다. 특히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2분기 매출 부진에 주가가 급락해 하루 만에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순자산 평가가치가 152억달러(약 20조7000억원) 증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기업 인텔은 2분기 적자를 기록했고, 테슬라의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33% 급락했다. 그나마 애플이 시장 예상치보다 1.6% 웃돈 분기 매출액 857억달러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미국 빅테크의 부진에 AI 산업에 집중 투자하던 시장의 큰손도 최근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 영국의 일간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헤지펀드 기업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엔비디아가 거품 속에 있다”며 “GPU를 대량으로 계속 구매할지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이에 기관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한국 정부의 이른바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에도 좀처럼 주가 상승이 요원한 국내 증시 대신 미국의 기술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이던 이른바 ‘서학 개미’들의 발걸음이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SEIBro)에 따르면 지난 6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엔비디아 주식 11억2388만달러(1조5561억원)어치를 매수했는데, 지난달 들어 지난 25일까지 4억8931만648달러(약 6783억원)어치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시장의 전망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 올해 하반기 증시 투자의 주요 장애물 중 하나다.

 

투자자들 사이 AI 거품론이 제기되고, 기술주의 실적도 둔화되고 있지만, 오히려 관련 기업들은 투자를 더 늘릴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FT는 이와 관련해 “올해 들어 AI에 유례없는 수준의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연말까지 지난해보다 (투자 규모는) 두 배로 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2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주요 빅테크는 올해 상반기에만 1060억달러(약 144조원)의 AI 투자를 진행한 바 있다. 이들은 하반기까지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전환기를 겪을 때는 과소 투자의 위험이 과잉 투자의 위험보다 훨씬 더 크다”며 AI에 대한 투자를 줄일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최근 미국 증시에 이어 한국 증시 역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가운데 약발이 떨어진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특효처방이 나올지 국내 투자자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