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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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신성’ 박태준, ‘금빛 발차기’ 성공…2016 리우 이후 8년 만에 태권도 올림픽 금메달 안겼다

한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의 구겨졌던 자존심이 8년 만에 다시 회복됐다. 한국 태권도 대표팀의 ‘신성’ 박태준(20·경희대)이 ‘금빛 발차기’로 2024 파리 올림픽 한국 선수단에 열두 번째 메달을 안겼다. 2016 리우 이후 8년 만에 나온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이다.

 

세계랭킹 5위의 박태준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세계랭킹 26위)를 2-0(9-0 13-1)으로 앞서던 상황에서 상대의 부상으로 경기 속행이 힘들어져 기권승을 거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태권도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00 시드니 이후 매 올림픽마다 1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내며 효자 종목 노릇을 톡톡히 해냈지만, 3년 전 열린 2020 도쿄에서 처음으로 ‘노 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구겨졌던 종주국의 자존심이 박태준의 금메달로 8년 만에 회복된 셈이다.

대한민국 태권도 대표팀 박태준이 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남자 58kg급 결승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기뻐하고 있다. 뉴스1

아울러 남자 58kg급의 올림픽 첫 금메달이다. 이 체급은 ‘태권도 황제’로 이름을 높였던 이대훈(現 대전시청 코치)조차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이대훈은 2012 런던에서 은메달을 따냈고, 2016 리우와 2020 도쿄에선 김태훈과 장준이 동메달을 따낸 바 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도 해내지 못했던 ‘금빛 발차기’이 대업을 스무 살의 신성 박태준이 해낸 것이다.

 

한국 태권도 남자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면 세월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08 베이징의 손태진(68㎏급), 차동민(80㎏ 초과급) 이후 한국 남자 태권도 선수는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2012 런던과 2016 리우에서는 여자 67kg급의 황경선과 오혜리만이 태권도의 유일한 금메달을 수확한 바 있다. 이래저래 박태준의 금메달은 한국 태권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셈이다.

 

이날 결승 상대인 마고메도프는 준결승에서 2020 도쿄 금메달리스트인 이탈리아의 비토 델라킬라(4위)를 준결승에서 제압하는 이변을 쓰고 올라왔다. 박태준 역시 이 체급 현재 세계랭킹 1위이자 2020 도쿄 은메달리스트인 모하메드 칼릴 젠두비(튀니지)를 꺾고 결승에 올라왔다.

태권도 대표 박태준이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를 상대로 공격을 펼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박태준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를 상대로 공격을 펼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준결승에서 둘 다 ‘언더독’으로서 승리를 거두고 올라온 만큼 기세는 호각세였다. 그러나 지난 2월 장준과의 한판 승부로 올림픽 티켓을 따낸 뒤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도록 꼭 금메달을 따서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박태준은 1라운드 경기 시작 6초 만에 상대 몸통을 발차기로 가격해 2점을 따내며 기선을 제압했다. 1라운드 중반 박태준의 오른발과 마고메도프의 왼발이 엇갈렸고, 박태준의 하체를 차던 마고메도프의 발이 꺾였다. 직후 마고메도프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마고메도프의 감점이 선언되면서 박태준이 3-0으로 리드를 벌렸다.

 

이후에도 격렬한 난타전을 펼치던 상황에서도 박태준의 경기 운영이 빛났다. 박태준은 종료 전 46초, 40초에 연이어 상대 몸통 공격에 성공하며 7-0으로 넉넉히 점수 차를 벌리며 1라운드 승기를 굳혔다. 종료 14초를 남겨놓고 마고메도프는 이전에 당한 부상이 악화된 듯 또 다시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마고메도프가 감점 2점을 더 받으면서 박태준은 9-0으로 1라운드를 가볍게 따냈다.

대한민국 태권도 대표팀 박태준이 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남자 58kg급 결승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와의 경기에서 충돌 후 고통스러워 하는 마고메도프와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 박태준이 아제르바이잔 가심 마고메도프가 치료를 받는 동안 기다리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마고메도프는 스텝을 제대로 밟기 힘들 정도로 부상 정도가 심해보였다.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더 싸우겠다는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이었지만, 박태준은 그런 투혼으로만 제압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2라운드 초반은 서로 감점으로 점수를 따냈다. 마고메도프가 감점 2점, 박태준이 감점 1점을 받아 박태준이 2-1로 앞선 상황에서 경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31초에 마고메도프의 머리 공격을 두고 아제르바이잔 코치가 판독을 신청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이후 박태준은 상대 머리를 회전 공격으로 성공시켜 5점을 따냈고, 몸통 공격도 연이어 성공시켰다. 그 과정에서 마고메도프의 감점 2점도 더해지면서 경기 종료 1분11초를 남겨놓고 13-1까지 크게 앞서나가면서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대한민국 태권도 대표팀 박태준. 뉴스1

이런 상황에서 마고메도프는 더 이상 경기를 속행하기 힘든 정도로 부상 정도가 심해지면서 경기를 포기했고, 박태준의 금메달이 확정됐다. 

 

감격스런 순간에 박태준은 상대의 부상으로 인해 곧바로 세리머니를 할 수는 없었다. 마고메도프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전한 뒤 태극기를 들고 매트를 돌며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했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