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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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AI가 여전히 할 수 없는 것

미완성의 베토벤 교향곡 10번
AI 활용해 마무리했지만 미흡
예술가의 감정·스토리 못 담아
음표만의 나열로는 감동 못 줘

인공지능(AI)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인간의 역할은 축소되고, 동시에 AI와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AI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분야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려주는 AI와 음악을 작곡하는 AI는 이미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도 AI의 활용은 화두다. AI가 클래식 음악 작곡에 사용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베토벤 교향곡 10번 복원 프로젝트였다. 요지는 과연 ‘AI를 통해 베토벤 교향곡 10번을 완성할 수 있을까?’였다. 베토벤은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를 도입한 교향곡 9번을 끝으로 교향곡을 더는 작곡하지 못했다. 미완성으로 남은 그의 교향곡 10번은 단편적인 스케치 단계에만 머물렀다. 여기서 AI를 통해 미완성 교향곡을 완성시키려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AI에게 베토벤의 모든 작품을 학습하게 한 뒤, 베토벤의 스타일로 10번 교향곡을 작곡하게 한 것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머신러닝이다. 시도는 흥미롭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베토벤 교향곡 10번이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대다수의 전문가는 AI가 작곡한 베토벤 교향곡 10번에 의문을 가졌다. 작품이 도무지 베토벤답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AI가 완성한 교향곡 10번은 과거의 베토벤 작품들을 분석해 도출한 것이었다. AI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엄청난 수의 패턴을 만들었다. 마침내 AI가 완성한 베토벤 교향곡 10번은 어딘가 베토벤의 음악과 비슷했다. 그런데 문제도 그거였다. 비슷하기만 했다. 베토벤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았다. AI가 완전히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내진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작곡가도 아닌 베토벤이기 때문에 더욱더 실망스러웠다. 베토벤은 매 순간 기존의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며 끝없이 변화해 나간 작곡가였다.

대표적으로 베토벤 현악사중주들을 관찰해보면 이해가 쉽다. 현악사중주 1번부터 마지막 번호까지 순서대로 들어보면, 베토벤이 사용하는 언어가 얼마나 여러 번 모양을 바꾸는지 알 수 있다. 마침내 최후의 형태에 이르러서는, 그 시작인 현악사중주 1번과 한참 떨어진 새로운 언어가 탄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 없이 베토벤 현악사중주 16번을 듣는다면, 이 작품이 베토벤의 것이라고 떠올리기 어렵다. 그러니까 인간 베토벤은 스스로 지속적인 피드백 루프를 돌려 새로운 패턴을 찾아낸 것이다. 현재의 AI는 완벽하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이것을 여전히 혁신으로 읽는다.

설령 언젠가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AI가 나타난다고 해도, 여전히 그 음악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음악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순간, 이 음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음악은 예술가들의 감수성과 스토리가 담긴 고도로 복잡한 산출물이다. 다시 베토벤을 예로 들 수 있다. 귀가 들리지 않았을 때 느꼈던 절망, 자유를 향한 갈망, 외부와 단절된 그가 자신의 내면으로 향했던 순간들, 이 모든 게 베토벤 음악에서 읽어낼 수 있는 대표적인 스토리다. 우리는 음악 속에서 베토벤의 외침이 느껴지는 순간 위로받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위대해질 수 있음에 전율한다. 인간 베토벤과 소통하며 음악 너머의 순간들을 느낀 것이다. 그때 바로 ‘감동’이라고 부르는 심리적 화학작용이 따라온다.

물론 AI가 만든 작품 안에서 인간의 감정을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느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AI 역시 학습된 패턴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을 산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는 왜 슬픔을 느꼈고, 또 왜 이 기쁨을 표현하고 싶은지 등등의 단계는 관여하지 못한다. AI는 감정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저 AI는 여러 단계 중 악보에 음표를 집어넣는 마지막 단계만 참여할 뿐이다. 그런 이유로 AI가 완성시킨 작품이 공허하게 다가온다. 음악 너머에 있는 우리가 사랑해 온 베토벤의 형상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