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인공지능(AI) 영화의 등장은 산업적으로는 창작인력을 대체할 것인가의 여부가 중요하지만 영화의 개념과 본질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할 점도 던져준다. 영화의 역사에서 영화의 개념과 영화라고 인정할 수 있는 매체와 표현의 범위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일반적인 영화 개념은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찍고 기록용 필름에 담은 후에, 상영용 필름으로 현상해서 이야기의 흐름 또는 작가의 의도에 맞게 편집해서 음성과 음향, 음악을 입혀서 극장에 있는 2차원 화면에 투사하면서 상영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개념은 20세기 초반에 완성되었고 중반까지 유효했다.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개발되어 가정에 보급됨에 따라 20세기 후반에는 일단 극장이 반드시 필수적인 부분이 아니라 선택 사항이 되었다. 극장에서 벗어나 다른 장소에서 텔레비전 드라마, 비디오 영화, 그리고 최근 OTT 드라마가 그렇게 기존의 영화에서 떨어져 나갔고 영화 상영과 관람의 공적인 특성이 사라지고 사적인 특성이 증가했다.
20세기 말에는 컴퓨터의 도입으로 영화 제작 과정의 후반 작업에서 컴퓨터그래픽과 디지털 작업이 추가되었고, 심지어는 아예 피사체를 필름이 아닌 디지털 파일에 녹화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영화도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사람과 사물을 카메라로 담기에 영화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은 여기서 더 나아가 가상현실(VR)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극장과 텔레비전, 컴퓨터 화면의 2차원성을 뛰어넘었다. 영화는 관객의 최대 시야 120도 각도의 평면적인 화면에 영상을 투사하지만, 가상현실은 전후좌우상하 720도에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 관객은 자기 앞에 놓인 대상을 관찰하지만 가상현실의 관객은 만들어진 이미지 안에 들어가서 상황을 가상으로 체험하게 된다.
영화에서 극장이 떨어져 나갔지만 여전히 카메라로 움직이는 사람과 사물을 촬영한다는 특성은 이 매체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그렇지만 새로 등장한 AI 영화는 카메라가 필요하지 않고 따라서 조명 장치도 필요 없으며 현실 속의 움직이는 사람과 사물을 찍을 필요가 없다. 초고속 인터넷에 사람과 사물의 이미지와 관련된 빅데이터가 이미 구축되어 있으니 창작자는 자기가 원하는 영상과 이야기를 얻기 위해서 컴퓨터에 명령어만 입력하면 콘텐츠가 나온다. 그러니 기존의 영화와 새로 등장한 AI 영화가 공유하는 특성은 그저 화면 속의 사람과 사물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영어의 필름(film)이나 이미지가 움직인다는 것을 뜻하는 시네마(cinema) 또는 무비(movie)라는 단어를 그동안 ‘영화’라고 번역해서 사용했다. 카메라로 찍은 필름은 이제 사라져 가고 카메라로 찍든 컴퓨터로 만들어내든 이미지가 움직이는 시네마와 무비는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노광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