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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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간 의료공백 해소… ‘희망의 숨결’ 불어넣다 [S스토리-'의료오지' 등불 된 단양군보건의료원]

2024년 7월 정식개원… ‘건강지킴이’ 탄생
지하 1·지상 2층 규모 응급실 등 10개과
의사 등 49명·최신 장비 100여종 갖춰

전국 16번째 보건의료원 세우기까지
중앙부처 담당자 찾기부터 ‘가시밭길’
파격 조건 내세워 전문의 구인난 해결

의료거점 역할 톡톡… 의료진 “보람”
7월 한달간 이용자, 군민 10% 넘어
年 40억 운영비 지원 유치 등 과제로

“전문으로 하는 의사 선생님이 계신다고 해서 왔어유.”

 

지난달 30일 충북 단양군 단양읍 상진리에 있는 단양군보건의료원 접수창구 앞에서 만난 가곡면 사평리 최모(89)씨는 “며칠째 머리가 아프고 속이 답답하며 정신이 없는 등의 증상이 있어 병원(군보건의료원)을 찾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지역 병원(의원급)에 다녀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서 얼마 전 문을 열었다는 큰 병원을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양군보건의료원 입구. 윤교근 기자

손녀 때문에 군보건의료원을 찾은 단양읍 상진리 이모(70)씨는 “밤에 20개월 된 손녀가 열이 38도나 올라가서 군보건의료원으로 왔다”며 “예전에는 40분이나 걸리는 인근 제천시에 있는 병원을 찾았어야 했는데 불편을 덜었다”고 전했다.

 

◆의료공백 9년 만에 다가온 ‘희망’

 

단양군은 의료오지로 꼽혔다. 군보건의료원에 따르면 2015년 4월 단양의 유일한 응급의료기관이자 종합병원인 서울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9년째 의료공백이 이어졌다. 또 응급실을 운영하는 노인요양병원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다. 지역에서는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군은 군보건소의 보건의료원 승격을 추진해 올해 6월 그 뜻을 이뤘다. 1963년 군보건소 설치 이래 61년 만에 공공의료기관에 응급실과 병실이 생긴 셈이다. 군보건의료원은 기존 보건소의 기능에 응급실, 전문의 외래진료, 입원 진료 등 병원이 더해진다. 현재 단양에는 보건의료원과 함께 보건지소 7곳, 보건진료소 15곳이 운영 중이다.

 

충북 단양군보건의료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살피고 있다. 단양군보건의료원 제공

군보건의료원은 전체면적 2995.73㎡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10개과(응급의학과·내과·정신건강의학과·마취통증의학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비뇨의학과·안과·치과·한의과)를 진료한다. 의료인력은 의사 16명, 간호사 16명, 간호조무사 7명, 의료기사 10명 등 총 49명이다.

 

응급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을 포함한 의사 5명, 간호사 8명, 임상병리사와 방사선사 8명으로 전담팀을 꾸려 365일 24시간 운영한다. 위급상황을 위한 자동 심폐소생술 장치와 구급 장비 등으로 각종 처치와 시술이 가능한 고상형 구급차도 갖췄다. 입원실은 30병상(4인실 7, 격리실 2)이다.

 

인근 제천과 충주 등지의 의료기관과 협업으로 운영효과도 높였다. 소아청소년과(화·목)는 제천명지병원과 충주의료원에서 의료진을 파견한다. 산부인과(화·목) 충주의료원에서, 비뇨의학과(목) 제천명지병원에서, 안과(화, 수)는 가톨릭대학교에서 소속 전문의 파견으로 진료를 맡는다. 내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치과, 한의학과는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료한다.

 

군보건의료원에 근무하는 한 전문의는 “두 달 정도 근무하면서 응급실 내원객 비율을 보면 지역 내 주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응급실 진료를 많이 받는 것으로 보인다”며 “건강 관리가 어려운 주민들이 의료서비스를 통해 개선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0대 간호사 이모씨는 “의료서비스가 가장 필요한 곳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평소 공공의료에 관심이 많았다”며 “의료취약지에서 경험은 더 큰 성장의 기회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들과 함께하면서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지역사회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간호사로서의 사명감도 느끼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22년 만의 ‘16번째 보건의료원’

 

군은 의료공백이 지속하자 종합병원 개원을 알아봤으나 여의찮았다. 단양은 인구가 3만명을 밑돌면서 수도권은 물론 도시에 비해 의료인력을 구하기 어렵고 수익성 등으로 종합병원의 관심도 없었다.

 

보건소의 보건의료원 승격은 2019년 보건복지부 농어촌서비스 개선 사업에 군립 공공병원 신설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서 본격화했다. 보건의료원은 다른 지방의료원과는 다른 소규모 공공의료기관으로 병상 규모나 진료 과목 등이 지역보건법에 의해 운영된다.

 

이 과정도 쉽지 않았다. 우선 보건의료원 개원 15번째인 전북 무주군보건의료원이 2002년 5월 7과목(내과, 일반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치과, 한방과)에 50병상으로 문을 열었다. 단양군보건의료원 개원과는 무려 22년의 공백기다. 이처럼 긴 공백기로 인해 중앙부처에서 보건의료원 담당자조차 찾기 어려웠다. 준비서류 등도 과거 설립한 사례를 찾아서 갖췄다. 특히 과거에는 중앙부처에서 보건의료원을 지정·추진하면서 국비 등의 지원도 많았으나 지원 체계 등도 거의 사라졌다.

 

단양군이 총력을 기울여 보건의료원 건립비 165억원 중 국비 20억원과 도비 65억원을 확보하면서 설립에 속도가 붙었다. 군보건의료원 관계자는 “15번째 보건의료원 이후 20여년의 공백이 있었던 16번째 보건의료원 설립을 준비하면서 주민들의 의료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목표로 직원들은 물론 단양지역 전체가 힘을 모았다”며 “어려움도 많았지만 현재로 봐서는 성공적”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건립이 확정되면서 또 하나의 산이 있었다. 의료인력 수급이다. 군은 지난해 12월 응급 간호사 8명을 채용했다. 당시 이들의 평균 나이는 31.1세로 최고령자는 43세, 최연소자는 25세로 간호사 자격 소지자 26명의 경쟁 속에 선발됐다.

단양군보건의료원 전경. 단양군보건의료원 제공

전문의 채용 과정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군은 전문의를 비롯한 공중보건의, 간호사 등 의료진에게 아파트(66~99㎡)를 제공하기로 했다. 전문의 연봉도 인상했다. 지난해 11월 1차 채용 공고 때에는 응급의학과와 내과 등은 3억여원, 정신건강의학과는 2억여원을 제시했다. 응급의학과의 경우 응시자 1명이 자격 미달로 탈락하면서 모집에 난항을 겪었다. 2, 3, 4차 모집에서 연봉 10% 인상 등을 내걸어 전문의를 채용했다. 이들의 보수는 다른 지방 보건의료원 전문의가 받는 수준에 각종 수당과 성과급 등을 합치면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보건의료원 중 최고 수준으로 우수 의료진 확보에 공을 들이면서 응시 요건을 갖춘 3명이 지원하는 효과를 거뒀다.

 

김문근 단양군수는 지난달 1일 열린 군보건의료원 개원식에서 “단양군보건의료원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고 진료하는 곳이 아니라 단양을 건강하게 만들고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한 달 이용자, 단양 인구 10% 넘어

 

의료진이 꾸려지면서 의료원 개원에도 속도가 붙었다. 응급실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가 비뇨의학과와 소아청소년과도 진료를 개시했다. 지난 5월 한 달간 비뇨의학과는 5회 진료에 40건, 소아청소년과는 7회 진료에 67건에 달했다.

 

단양군보건의료원 복도에 주민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단양군보건의료원 제공

군보건의료원이 임시 개원한 지난 6월 이용자는 2000명으로 지난 1월 단양군보건소 이용자 1000명의 두 배에 이른다. 정식 개원한 지난달 이용자는 2890명에 달해 단양군민 2만7000여명의 10%를 넘어섰다. 응급실 이용자는 두 달간 804명으로 응급 의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군보건의료원에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전산화단층촬영검사(CT)를 도입해 뇌, 흉부, 복부, 척추, 골반, 뼈 등 몸의 종양이나 이상병변을 파악할 수 있는 통증이 없고 비교적 안전한 검사를 진행한다. 내시경과 초음파 등 100여종의 최신 의료장비도 갖췄다. 지난 6월24일 시멘트산업사회공헌재단은 군보건의료원에 6억5000만원 상당의 최신 의료 장비 지원을 약속하면서 내시경과 망막녹내장 검사 등의 의료 장비를 들여왔다. 군은 조례를 제정해 군보건소 때와 같이 65세 이상 지역민에게는 진료비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응급실 시범운영 기간인 지난 5월엔 신속한 대처로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단양읍에 사는 70대 노인이 피부과 약을 먹고 발진과 숨이 차는 증상이 발생해 내과에 내원해 치료 후 대기 중 갑자기 쓰러졌다. 온몸에 땀을 흘리고 의식을 잃어가던 70대를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응급실로 옮겨 신속한 처지에 나서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

 

강규원 군보건의료원장(군보건소장)은 “응급의료법에 응급의료는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과 의무이며 국민은 성별, 연령, 지역의 차별 없이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며 “단양에서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진료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지역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군보건의료원의 운영 안정화와 함께 응급의료, 만성질환관리, 전문진료과목 확대, 입원환자 관리, 건강증진센터 설치 등으로 통합적, 실질적, 지속적인 의료서비스 향상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과제도 있다. 4차 채용에서 합격했던 의료원장이 개인 사정으로 오지 않아 보건소장이 업무대행을 맡는다. 군보건의료원장은 운영은 물론 진료까지 할 수 있다. 처우는 4급 상당의 개방형 4호 공무원 신분이다. 연봉은 지방공무원 보수 규정을 적용받는다.

 

여기에 의료취약지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정부와 지역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군보건의료원 관계자는 “정부와 지역사회의 지원을 받아 필요한 의료 자원과 기반을 확충해 보다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연간 40억원 정도로 예상되는 의료취약지 보건의료원 운영비 등에 국비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장 기본적인 건강권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인구유출로 인한 지역붕괴는 자명한 일”이라며 “인구소멸지자체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 보건의료원이 지역 공공의료의 중심으로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단양=윤교근 기자 sege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