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가 최근 독일의 유엔군사령부 가입을 적극 환영하고 나섰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역내에서 미국에 이은 두 번째 경제대국이자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연합(EU)을 이끄는 강대국 독일의 관여가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습이다.
9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독일이 유엔사 회원국이 된 것을 반기는 글이 게재돼 있다. 골드버그 대사는 “우리(미국)는 독일이 유엔사의 새로운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평화와 안보에 대한 독일의 의지는 한반도의 안정에 필수적”이라며 “정전협정을 준수하고 이 지역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강력한 파트너십을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6·25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1953년 4월 독일(당시 서독)은 유엔군을 이끌던 미국에 “야전병원을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상황이었다. 더욱이 전범국이란 이유로 유엔 회원국 지위조차 얻지 못 하고 있었다. 미국의 동의를 얻긴 했으나 의료진 구성과 한국 파견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됐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로 한반도 전역에서 총성과 포성이 사라진 뒤에야 독일 의료진이 부산항에 도착했다. 독일 적십자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듬해인 1954년 5월부터 부산에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1959년 3월까지 5년 가까운 기간 동안 입원 환자 2만여명과 외래 환자 28만여명을 진료했다. 한국인 간호사를 비롯해 의료인 수십명을 양성한 것도 중요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정전협정 체결 후 한국에 왔다’는 이유로 6·25전쟁 참전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60년 넘게 흐른 2018년에야 당시 문재인정부는 독일을 이탈리아·인도·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와 더불어 의료지원국으로 인정했다. 이로써 6·25전쟁 참전국은 독일까지 포함해 총 22개국으로 늘어났다.
다만 문재인정부는 유엔사 회원국으로 가입하려는 독일의 시도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힘쓰던 문재인정부가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한국의 태도는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월 미국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독일의 유엔사 참여를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독일이 유엔사 회원국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최근 방한해 독일의 유엔사 가입 절차를 마무리지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은 “독일의 유엔사 가입은 한반도 안정에 대한 독일의 의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연대의 신호”라고 화답했다. 경제와 군사 두 분야에서 모두 강대국인 독일의 유엔사 가입을 놓고 국제사회에선 ‘유럽과 인도태평양 두 지역을 밀접히 연계시켜 자유 진영 전체의 안보를 강화하려는 미국과 나토의 구상이 실질적 진전을 이루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