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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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켜진 에펠탑 아래서 펼쳐지는 비치발리볼…파리 한여름 밤의 낭만, 그 진수를 느꼈다 [현장르포]

그야말로 파리 한여름 밤의 낭만을 모두 삼킨 듯한 기분이었다.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 특설 경기장에서는 브라질과 캐나다의 2024 비치 발리볼 여자 결승이 펼쳐졌다.

사진=AP연합뉴스

한국 경기도 아닌데, 그것도 밤 10시30분에 열리는 경기를 간 이유는 단순했다. 억울해서였다.

 

뭐가 억울했을까. 우선 파리에 온지도 2주가 넘었는데도 파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에펠탑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언뜻 언뜻 보이는 에펠탑은 본 적이 있었지만, 그 앞에 가서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파리에 와서 무수한 경기를 직관했음에도 구기 종목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남자 농구 8강 4경기와 4강 2경기를 모두 현장에서 지켜봤음에도 여전히 그 목마름은 컸다. 아마도 한국의 구기 종목을 핸드볼 딱 한 경기를 본 게 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이유로 즉흥적으로 에펠탑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고, 에펠탑 아래에서 펼쳐지는 비치발리볼을 보러 갔다. 생애 첫 비치발리볼 경기 직관이었다.

조명이 켜진 에펠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아래에 만들어진 비치발리볼을 위한 특설 경기장. 해변가가 아님에도 에펠탑이 주는 무드 덕분에 정말로 해변가에서 경기가 열리는 듯한 느낌도 줬다.

 

센느강에서 불어오는 적당한 강바람, 여전히 파리의 낮은 뜨겁지만 밤이라 시원한 온도. 8월초임에도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 기분까지 들게 했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브라질과 캐나다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와 클럽 음악까지 흘러나오면서 마치 거대한 야외 클럽에 온 느낌까지 들었다. 어느 팀의 승리도 상관없는 나까지도 괜스레 마음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결승전답게 두 팀의 경기력도 매우 훌륭했다. 결과는 브라질의 승리였다. 1세트만 해도 경기 초반 캐나다가 앞서나가며 13-6까지 리드폭을 넓혔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브라질 팬들의 응원 열기가 선수들에게 전해졌을까. 야금야금 추격전을 개시했고, 결국 17-17 동점을 만들어냈다. 듀스 접전 끝에 브라질이 1세트를 따내면서 승기를 잡았다.

사진=AP연합뉴스

아쉽게 1세트를 내준 캐나다 선수들도 이대로 금메달을 내줄 수 없다는 듯, 2세트는 브라질 선수들을 압도하며 21-12로 잡아냈다.

 

금메달을 가른 3세트. 승자는 브라질이었다. 세트 중반 감정이 상한 양팀 선수들이 네트를 앞에 두고 설전을 펼치기도 했지만, 우스꽝스러운 음악으로 네 명의 선수들의 상한 마음을 달랬다. 결국 선수들도 웃음으로 성난 감정을 풀고 다시 경기에 임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사진=AFP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3세트는 14-10에서 브라질의 실바 라모스의 공격이 캐나다 모래 코트에 꽂히면서 브라질의 승리로 끝났다. 금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브라질의 두 선수는 서로를 얼싸안고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했다. 브라질 삼바 음악이 에펠탑 특설 경기장에 흐르면서 일순간 축제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렇게 파리의 한여름밤의 낭만을 지켜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