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간에 매각된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동교동 사저를 재매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야권에서 커지고 있다.
국민 세금을 투입해 다시 사들이거나, 정치인의 사재 출연과 후원금 모금으로 자금을 충당해 문화유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미 김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김홍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부 사업가에게 100억원에 매각해 수익을 챙긴 상황에서 국민 세금을 써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왜 민간에 매각했나
동교동 사저의 민간행(行)은 17억원의 상속세가 발단이 됐다.
당초 이희호 여사는 동교동 사저를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할 것을 주문하며 매각 시 수익의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 나머지 3분의 2는 김홍일·홍업·홍걸 3형제가 똑같이 나눠가지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유언의 형식을 문제 삼아 ‘형제의 난’ 끝에 이를 단독 소유했다.
이어 17억원의 상속세가 부과되자 이를 감당할 수 없어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자에게 매각했다. 김 전 의원은 현재 정치권에서 거론하는 공공기념관, 문화재 지정을 모두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기념관은 상속세 문제로 국세청에 근저당이 잡히며 서울시에서 꺼려했고, 문화재 지정은 50년 이상 넘어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상속세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정치권에서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입자는) 건물을 부수거나 카페로 만들 생각이 없고 낡은 부분을 단장해 공간을 보존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민간 기념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모씨 등 3명은 지난 달 2일 김 전 의원으로부터 동교동 사저를 100억원에 매입하면서 은행에 96억원의 근저당을 잡혔다. 거액의 대출을 일으킨 만큼 영리 활동, 즉 DJ 사저를 활용한 장사가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김대중재단이 대신 집을 매입해 상속세, 양도소득세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안도 추진됐지만, 매입 가격에 대한 입장 차가 커 불발됐다. 김 전 의원은 “재단에선 그동안 제가 사저 유지를 위해 부담했던 비용과 상속세를 합한 20억원만 대겠다고 제안했다”며 “공시지가 기준으로 30억원 정도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정청래 “국비로 매입”…김재원 “나랏돈 떼먹을 수 없어”
결국 동교동 사저가 민간에 넘어가면서 정치권에선 뒤늦게 해법 모색에 나섰다.
DJ 비서실장을 지냈던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서 “동교동 사저 문제에 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국민과 민주당에 손을 벌리는 몰염치보다는 매입자를 접촉하고 다시 매각하게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재 6억원 가량을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같은 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7일 당 최고위원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동교동 사저에 대해 “국비와 서울시비, 필요하면 마포구비를 보태서 매입해 공공 공간으로 만들어 문화유산화 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 사저를 대한민국의 공공재산이자 문화역사의 산실로 만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국가 기관이 나서서 역사의 맥을 이어나가자”고 했다.
앞서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띄운 새로운미래 전병헌 대표는 지난 5일 DJ 사저 앞에서 현장 회의를 열고 “국가 등록 문화유산으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윤상현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서 “동교동 사저는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과 투옥 등 인고의 시간을 보낸 현대 정치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라며 “오는 9월15일 발효되는 ‘근대현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의한 법률’에 따라 소유자가 직접 관리하기 어려운 문화유산을 국가가 특별 관리할 수 있도록 여야가 머리를 맞대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형제 간에 소송까지 해서 돈을 다 빼간 집에 대해 지금 다시 국고에서 매입해서 문화유산으로 남긴다면 과연 국민이 동의하겠느냐”며 “이 나라 좌파들은 나랏돈을 떼먹는데만 혈안이 돼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론도 엇갈린다. 동교동 사저의 역사적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미 김홍걸 전 의원이 거액을 챙긴 상황에서 세금을 써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맞붙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