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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 열립니다”… 새벽 함께한 ‘시민의 발’ 지하철 1호선 [심층기획]

서울 지하철 올해 개통 50주년

새벽 깨우며 쉼없이 ‘씽씽’
“일상에 없어선 안될 존재”

식당직원·택배기사·학생·관광객까지
평범하고도 특별한 일상 싣고 달려

아직 동트기 전인 6일 오전 4시20분 서울 동대문구 이문차량사업소. 기관사가 운전실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이문차량사업소에서 1호선 광운대역까지는 속도를 높이지 않고 움직인다. 노선의 본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선로의 혹시 모를 이상을 감지하고 예열하는 단계다.

새벽의 차분한 공기와 달리 광운대역에선 이미 많은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나를 이용하지만, 이 시간, 이 자리엔 유독 매일같이 보는 익숙한 얼굴이 많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은 앉는 자리도 늘 비슷하다. 이날도 나란히 앉은 장모(64)씨와 김모(68)씨는 10년 넘게 첫차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다. 장씨는 서울역에 내려 식당일을, 김씨는 신설동역 인근에서 건강식품 소매점을 한다. 김씨는 “말을 안 걸어도 서로 누군지는 다 안다. 한 명이라도 안 보이는 날엔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내가 없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이들. ‘나’, 지하철 1호선은 50년을 한결같이 시민들과 함께 달려왔다.

6일 새벽 4시 서울 동대문구 이문차량사업소에서 1호선 열차가 첫차 운행을 앞두고 대기 중이다. 코레일 제공

조주남(75)씨는 시간이 날 때면 1호선 동묘앞역을 찾는다. 홀로 사는 그에게 이곳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상이다. 탑골공원이 위치한 종로3가역부터 청량리역까지 1호선을 따라 이어진 상권에는 조씨와 같은 노인들이 많다.

 

거리에 가판대를 세운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비슷한 또래의 노인들이다. 조씨는 “별일이 없어도 매일같이 동묘에 간다”고 한다.

 

◆시민의 발로, 쉼 없이 달리다

 

종로3가역에는 이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바둑을 두는 탑골공원부터 단돈 1000원에 막걸리 한 잔을 파는 노점, 매일 점심을 해결해 주는 무료급식소 등 없어선 안 될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상열(61)씨는 매일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그는 오늘도 나를 타고 이곳 복지관까지 왔다. 김중권(70)씨는 “인천에서도, 수원에서도 여기로 노인들이 모인다”며 “같이 줄을 서다 보면 말도 걸고 하면서 친해진다”고 들려줬다. 해가 질 때쯤 다시 집으로 향하는 김씨와 같은 이들의 하루는 1호선에서 시작해 1호선으로 끝난다. 내가 있기에 적적한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서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심 뿌듯하다.

 

서울역 1호선 승강장에서 이용객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나를 발판 삼아 일하는 노인들도 있다. 강두영(71)씨와 같은 지하철 택배 기사들이 그렇다. 강씨는 오토바이나 트럭이 아닌 나를 이용해 물건을 운반한다. 동대문종합시장이 위치한 동대문역 사무실을 거점 삼아 나를 타고 서울 외곽까지 이동한다. 2일에도 동대문역에서 강씨는 커다란 짐을 어깨에 메고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운임에서 수수료 빼고 7000원 정도를 버는 그에게 나는 없어서는 안 될 발이다.

 

반세기를 살다 보니 격세지감을 느낄 때도 있다. 동대문역을 지날 땐 옛날과 달리 유독 낯선 말이 많이 들린다. 패션거리와 공장이 공존하는 동대문역은 외국인 관광객과 이주민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역 중 하나다. 7일 동대문역에서 마주친 베트남인 응오티홍눙(22)씨는 “여행자에게 지하철은 가장 편한 교통수단”이라고 했다. 동대문역 일대 옷 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청년 팜씨와 동료들도 “일상에 없어선 안 될 존재”라고 나를 추켜세웠다. 오늘도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킨다.

 

1971년 10월 23일 촬영한 서울시청 앞 지하철 1호선 공사현장. 서울시 제공

◆추억과 역사가 된 50년

 

1974년 8월15일 첫 운행을 시작해 50년을 달리는 사이 세상은 천지개벽했다. 나를 둘러싼 풍경도 바뀐다. 변화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해 3월31일 동대문구 외대앞역 근처에 있었던 휘경4건널목의 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이 내가 이곳을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대학원생 서준성(26)씨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 중 하나다. 서씨는 “‘땡땡’ 하는 건널목의 정겨운 소리가 사라진 건 아쉽다”면서도 “건널목 사고가 수차례 났던 걸 생각하면 1호선이 발전하는 과정인 것 같다”고 했다.

 

나를 비롯해 한반도의 철도를 주제로 영상을 제작해 12만여명의 구독자를 모은 유튜버 ‘역쟁이’ 정윤성씨는 “1호선의 연장이 계속 이어졌지만, 평택을 거쳐 충남 천안까지 연장한 것이 특히 중요한 순간”이라며 “전철 노선이 이렇게 길어질 수 있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1974년 지하철1호선 개통 대비 시운전 모습. 서울시 제공

쉰살이라는 나이를 먹는 동안 나와 이용객의 추억도 그만큼 쌓였다. 유튜버 정씨는 나에 대해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기차를 타러 갈 때마다 이용한 노선이라 추억이 많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정민종(25)씨는 나를 생각하면, 금정역의 달콤한 향기와 어머니의 사랑이 떠오른다고 한다. 어린 시절 경기 안산에 살던 정씨는 환승을 하러 항상 금정역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델리만쥬를 사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지하철이 준 좋은 기억 덕분일까. 정씨는 옛 철도 터를 찾아 답사를 다니는 ‘철도 덕후’가 됐다. 정씨는 “철도가 남긴 흔적을 따라 길이 생기고 건물이 올라간 걸 보면 우리 삶에 철도가 준 커다란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고 촌평했다.

 

서울역 지하철 1호선 승강장에서 열차가 빠져나가고 있다. 뉴시스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온종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다. 오늘치 운행을 마친 나와 내 동료들은 하나둘씩 차량사업소로 돌아온다. 사업소에 들어선 나를 반겨 주는 것은 10여명의 차량 정비사 선생님들이다. 그들은 내 몸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 지붕 위에 올라 내 몸에 전력을 공급하는 팬터그래프 상태를 확인하고, 바퀴 아래까지 랜턴을 비춰 손톱만 한 균열까지 집어낸다. 마모된 부품은 교체하고, 20m짜리 한 칸씩 10칸으로 된 객실 내 모든 배전반을 하나하나 여닫아가며 살핀다. 청소원들은 내 몸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다. 한 시간 반 넘는 정비가 마무리되고 나서야 나는 혼자 남겨진다.

 

내가 잠든 후에도 점검은 끝나지 않는다. 내가 달리는 선로와 내게 전기를 공급하는 전로를 또 다른 정비사들이 검사하기 때문이다.

 

6일 새벽 이문차량사업소에서 동료들과 나의 몸 이곳저곳을 닦고 조이고 기름칠한 노송철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팀장은 나를 “1호선은 시민의 발이지만, 평생을 1호선 라인에서 살아온 나의 발이기도 하다”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