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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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재정위기 ‘매우 심각’ [알아야 보이는 법(法)]

한 국립대병원의 재정 상황이 완전자본잠식 상태라는 기사가 보도된 바 있었다. 국립대병원은 국립대학병원 설치법 등에 따라 법인으로 설립되어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 알리오에 공개된 해당 법인의 작년 말 기준 재무제표에는 이미 부채 총액이 자산 총액을 초과해 자산과 부채의 차액인 자본이 ‘마이너스 상태’인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되어 있다. 좀 더 살펴보면 작년 당기순이익은 839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영업활동인 의료 부분에서 현금 유출액이 230억원 넘게 발생해 작년 말 기준 현금 보유액이 350억원 정도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부터는 병원 건설 과정에서 받은 대출금에 대한 원금 상환이 시작된다고 하므로 유출될 현금은 작년보다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의료상황을 보면 당분간 영업활동의 현금 흐름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우므로 자금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완전자본잠식 상태라고 하더라도 영업, 투자나 재무 등으로부터 현금 흐름이 원활하면 대출 원리금 등이나 고정비 지출 등을 감당하면서 경영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 대학병원은 일반 회사처럼 신주 발행 등을 통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므로 영업활동이 원만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출이나 외부 보조금 없이는 현금이 부족한 상황을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자본잠식이라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원리금 회수 리스크를 고려할 때 신규 대출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립대학병원설치법 제19조 제3항은 ‘대학병원의 운영비 및 시설·설비에 드는 경비와 차관(借款)의 원리금 상환 경비는 대학병원의 수익으로 충당하되 부족한 경우에는 정부가 보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은 정부의 보조를 받으려면 시행령에 따라 해마다 4월30일까지 교육부에 보조금 요구 신청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기간은 이미 지났고, 만약 병원에서 교육부에 보조금 요구를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그 신청한 예산이 확정되어야 하므로 현재로써는 보조를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신규 대출이나 보조금이 없다면, 현금이 부족한 만큼 단기적으로는 채무 상환 유예 등의 조치가 필요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채권자들과 채무조정을 하거나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국립대병원이나 공공기관인 지방의료원 등에서도 재정적 상황이 좋지 않은 곳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알리오를 통해 경영 실적이 공개된 국립대병원 중에는 작년 말 기준 자본 대비 부채의 비율이 1500%를 넘는 곳도 있는데, 이 같은 의료상황이 지속된 지 반년이 다 되어 가는 현재는 더 악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재무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예상되는 병원에서는 선제로 채무 상환 유예 등의 조치를 검토해야 할 수 있다. 채권자로서는 채권 회수가 기한 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상급종합병원이 일반 병상을 5~15%로 줄이고 대신 응급·중증·희귀질환 위주의 환자를 중점 진료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위와 같은 질환 군에 대한 치료는 지금까지는 적자였거나 적자를 겨우 면하는 수준의 수가가 책정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질환의 치료 비중이 커지면 상급종합병원의 진료수지는 전보다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관련 수가를 증액해 해결할 수 있음을 밝힌 바 있으나, 정확히 얼마가 필요한지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 통계상 2022년 기준으로 상급종합병원의 입원 관련 요양급여 총액은 10조8000억원가량 된다. 진료 방향 전환에 따라 10% 감소한다면 1조원 정도가 줄어들게 될 것이고, 비급여 부분까지 합하면 감소폭은 더 커질 것이다.

 

단일 병원 기준 최대 병상을 보유한 병원의 재무제표를 보면 2022년 기준 입원 수입이 1조3000억원 정도였다. 이 병원만 보면 입원 수입이 10% 감소한다면 1300억원 감소한다고 볼 수 있다. 진료량이 감소하면 소요되는 재료비 등이 줄어 실제 감소하는 수익의 폭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적어도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재원이 상당한 정도로 필요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15∼64세 인구수를 0∼14세 유소년 인구수와 65세 이상의 노년 인구수와 비교한 총부양비 그래프다.

 

2021년 기준으로 15∼64세 인구 100명이 16.6명의 유소년과 23.1명의 노년을 부양해 모두 39.7명을 부양했음을 알 수 있다. 이 39.7이 총부양비이다. 총부양비는 아래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계속 증가하여 2050~2060년에 100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15∼64세 인구 1인당 1명 이상의 유소년이나 노년 인구를 부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총부양비의 증가는 1인당 부담해야 할 부양이나 복지 관련 비용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체계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비용은 증가하는데, 부담할 인원이 감소한다면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속가능성을 이유로 비용 증가를 억제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의료 공급주체가 대부분 민간이 담당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의료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그러한 상황에 놓인 것일지도 모른다.

 

해결 방안이 단번에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현재의 의료상황에 이르게 된 의과대 증원 문제만 놓고 보면, 이번 입법고시에서 출제된 의대 증원 사안 관련 문제와 같이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놓인 것일 수도 있다. 협력이 되지 않아 서로에게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2020년 의·정 합의나 그 이후의 의정협의체가 파행으로 끝난 것도 그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합의했으나 그 이후에 합의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다시 합의할 이유나 합의를 다시 하더라도 지켜진다는 보장이 있느냐는 반발이다. 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면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해결의 실마리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