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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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30년 공직 생활 면장 출신 군의원의 ‘악성 민원 사주’ 의혹 [강승우의 뒤끝작렬]

어느 17년차 7급 공무원의 ‘눈물의 생존기’
‘뒤끝작렬’은 우리 동네에서 이슈가 됐던 기사를 다시 까발리고 들춰내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 드리고 관심을 재조명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취재 뒷이야기, 기사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 앞으로 취재 계획 등을 딱딱하지 않게 써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보는 언제든 대환영입니다. [편집자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7급 공무원이 군의회 부의장을 검찰에 고소…왜?

 

이번 취재는 저한테 도착한 한 통의 메일을 확인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발신인은 경남 의령군공무원노조였습니다.

 

내용인 즉슨, 의령군청에 근무하는 7급 공무원 A씨가 의령군의회 부의장 B군의원을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힘든 결정을 내린 A씨를 동료 공무원 모두가 응원하고 격려한다고 했습니다.

 

공직 생활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한 적이 있다면 아마 아실 겁니다. 공무원이 ‘감히’ 의원을, 그것도 부의장을 고소한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래서 어찌된 영문인지 보다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A씨를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의령군 17년차 공무원 A씨(가운데)가 1년 넘게 의령군회의 부의장과 그의 제부로 추정되는 민원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며 검찰에 고소하자 동료 공무원들이 A씨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있다. 의령군공무원노조 제공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B부의장의 실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A씨는 B부의장과 여태껏 겪었던 일련의 과정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는데, 저는 이를 토대로 독자들께 설명하겠습니다.

 

한 폐기물처리 업체가 의령군 부림면 경산리 동산공원묘원 내에 9100㎡ 규모의 폐기물을 쌓아놓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명 ‘동산공원묘원 폐기물 불법 성토 사건’이 지역에서 뜨거운 이슈가 됐습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경남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작은 동네가 가장 시끄러운 동네가 돼 버린 것이죠.

 

의령군은 2022년 11월 토양오염 기준을 초과한 토사 전량을 원상복구하라고 폐기물처리 업체에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반발한 이 업체는 이 명령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심판을 제기했지만 기각됐습니다.

 

A씨는 당시 군 환경과 폐기물처리 담당 주무관이었고, B부의장은 행정사무 조사특위 위원장이었습니다.

 

B부의장은 불법 성토 관련 매립 경위와 처리 결과를 확인해야 할 위치에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A씨가 생각하기에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석연치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지난해 5월 군은 불법 성토한 토사의 원상복구 행정지시를 내립니다. A씨 상사인 환경과장, 담당계장이 군의회에 불려가게 됩니다. 이후 하루 만에 원상복구 행정지시는 보류됩니다.

 

이 시기는 장마철을 앞두고 있던 터여서 비로 인한 토사 유출 피해가 우려됐습니다.

 

이에 군은 25t 트럭을 동원해 원상복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A씨와 환경과장 등은 B부의장실로 불려가 “원상복구를 중단하라”, “너거(너희) 다 고발한다”는 등의 이해하기 힘든 지시와 폭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민원 사주’ 의혹과 판박이?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고 합니다. 무리한 민원을 넣으면서 1년 넘게 A씨를 괴롭힌 민원인 C씨가 등장한 시점이 말이죠.

 

사실 A씨는 B부의장과 마찰을 겪은 후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털어놨습니다.

 

자신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공무원들까지 자신 때문에 지적을 받는 상황이 생기자 A씨는 폐기물 담당 업무를 포기하고 맙니다.

 

면사무소로 발령 나면서 A씨는 이제 B부의장과 엮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위안을 삼으며 마음을 추스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A씨의 착각이었습니다.

 

지난해 C씨는 A씨를 두 차례 고발하고, 폐기물처리 업체와 관련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이에 대한 A씨와의 통화 내용을 수사기관에 수사의뢰했습니다.

 

또 세 차례에 걸쳐 내용증명을 보내 답변을 받고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받았는데도 올해 1월부터 다시 군청 홈페이지에 민원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A씨는 C씨가 지역의 한 인터넷매체에 자신과 관련해 투고했는데, 사실무근의 허위사실로 주변에 괜한 오해를 받게 되면서 정신적으로도 큰 상처를 받았다고 울먹였습니다.

 

그런데도 B부의장이 군 감사팀장을 의원실로 불러 A씨를 징계하고 C씨에게 사과하라고 종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A씨는 다시 충격을 받게 됩니다.

 

A씨는 C씨에게 사과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반문하고 있습니다.

 

의령군의회 부의장(왼쪽 세 번째)이 해외여행 갔을 때 찍은 가족 단체 사진. 왼쪽부터 부의장 제부로 추정되는 남성. 왼쪽 두 번째는 부의장의 친여동생이며, 맨 오른쪽은 부의장의 남편이다. 부의장은 제부를 동원한 ‘악성 민원 사주’ 의혹이 제기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이 사진을 삭제했다. SNS캡처

이런 상황에서 취재하다보니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C씨가 순수한(?) 민원인이라고 보기엔 의심이 드는 정황을 포착한 것이죠.

 

C씨는 B부의장의 친여동생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다시 말해 B부의장과는 사실상 제부(弟夫) 관계에 있는 가족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과 판박이 같지 않나요? B부의장의 경우는 ‘악성 민원 사주’ 의혹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에 대해 B부의장의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입장을 말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도 보냈지만 끝내 B부의장의 반론은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A씨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고 참았는데 앞으로는 일방적으로 기사를 작성한 언론과 군, 노조 등에 적극적으로 법적인 조치를 하려고 계획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의령군 공직 사회에서는 “감히 면장 출신의 군의회 부의장에게 17년차 공무원이 개긴 괘씸죄 아니냐”는 등 숱한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B부의장이 30년 넘게 의령군에서 공직 생활을 하면서 공무원노조 부지부장도 하고 말년에는 면장으로 퇴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죠.

 

B부의장과 C씨의 관계가 A씨를 둘러싼 실체적 진실을 파헤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기사는 A씨가 이들을 고소한 이유를 동료들에게 설명한 글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17년간 근무하면서 부족하지만 군민을 부모·형제와 같이 생각하며 일했는데,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이 닥쳐왔습니다. 제가 계속 회피하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갑질과 협박, 보복성 악성민원을 서슴지 않고 공무원을 괴롭히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아 법의 심판을 의뢰하게 됐습니다”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수도 있지만 후원해주시는 의령군 공무원들이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동료 공무원들이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게 성실히 법적 준비를 하겠습니다”


의령=강승우 기자 ks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