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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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창발성 짓밟는 대한체육회… '스포츠 꼰대'의 고질병

“제가 하고픈 이야기에 대해 한번은 고민해주는 어른이 있길 빌어본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금메달을 딴 안세영(22·삼성생명)의 발언은 체육계에 후폭풍을 낳았다. 안세영은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허빙자오(중국)를 물리치고 정상에 섰다. 28년만에 금메달을 딴 순간, 안세영은 대한배드민턴협회에 쌓아왔던 감정을 풀었다.

5일(현지시간)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 허빙자오와 경기를 안세영이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안세영의 발언은 찬반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협회가 특정 선수를 위해 운영되길 바라는 이기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Z세대의 창발성을 무시할 수만 없다는 평가와 함께 ‘스포츠 꼰대’들에게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우선 안세영의 저격에 안일하게 운영됐던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민낯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협회는 213억원의 예산을 지원받는 등 대한체육회 60여개 가맹단체 가운데 손에 꼽힐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후원계약 등 자체 수입은 93억원으로 재정자립도는 46.7%에 불과하다. 자체 수입이 정부 보조금에 절반도 넘지 못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이사가 28명이나 되는 등 40명에 가까운 임원을 두고 있으면서도 기부금 수입이 없는 점도 눈에 띈다. 대한자전거협회 등 올림픽 종목조차 아닌 단체 기부금이 억원대에 달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아쉬운 대목이다.

 

배드민턴협회의 곳간이 비어있기 때문에 후원사의 입김은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협회 운영비가 대부분 이 곳에서 나오기 때문에 선수들은 개인 후원이 아닌 협회를 지원하는 업체의 용품에 성실할 수밖에 없다. 안세영은 “광고가 아니더라도 배드민턴만으로 보상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스폰서나 계약적인 부분을 막지 말고 풀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대한체육회. 뉴스1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싹쓸이에 성공한 대한양궁협회와 비교되는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양궁협회의 재정자립도는 81.4%에 달한다. 정의선 양궁협회장은 매년 수십억원을 지원하고 있고, 이번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의 몸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해 양궁 경기장과 도보 5분 거리의 호텔을 잡아 선수들을 머물게 했다.

 

배드민턴협회는 선수 선발도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협회는 경기결과 70%와 평가위원점수 30%를 반영해 대표 선수를 선발한다. 배드민턴협회는 ‘복식 등에서 파트너쉽(60%)와 경기태도(40%)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평가위원의 주관이 반영되면서 객관적인 선발이 이뤄질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안세영이 “배드민턴에서 왜 금메달이 1개 밖에 나오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한다”고 지적한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선수단 결산 기자회견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선수 선발 방식은 올림픽 성적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양궁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64강부터 대회를 치러야 한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대표팀 선발이 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펜싱은 경기 결과 외에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갈 수 없는 방식으로 선수를 뽑는다. 국내 대회 성적에 국제펜싱연맹 세계랭킹 포인트를 합산한 순위가 선발 기준이다. 이런 선발과정을 거친 결과 펜싱은 지난 대회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주역 2명이 떠났어도 3연패를 달성했다.

 

사격은 대표 선수 선발 방식 변화로 다시한번 효자종목 입지를 다졌다. 대한사격연맹은 이번 대회부터 경기 후 ‘고득점자’를 대표로 선발하는 방식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쏜 선수를 한명씩 탈락시키는 ‘녹아웃’ 방식으로 변경했다. 선발전부터 흔들리지 않는 멘털을 가진 선수를 뽑겠다는 의도였다. 결국 이 방식은 한국에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를 안겼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