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인근에서 노숙인을 살해한 30대 남성이 첫 재판에서 심신장애를 주장했다. 범행 자체는 인정했지만, 당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는 12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A(37)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A씨는 지난 6월6일 새벽 서울역 지하보도 입구에서 노숙인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변호인은 A씨가 범행 당시 심신장애 상태였다며 정신감정 혹은 진료기록 감정을 신청했다. 변호인은 “의견을 드리기에 앞서 돌아가신 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며 “피고인은 살해한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2017년부터 있던 조현병 증상으로 이 사건 범행 당시 심신상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었기에 공소사실을 부인한다”고 밝혔다.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책임 없는 자에게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책임주의는 형사법의 기본원리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만약 법질서가 부정적으로 평가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결과의 발생이 어느 누구의 잘못에 의한 것도 아니라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형벌을 가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실제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검거 당시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는 노숙인을 살해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잠자던 노숙인을 여러 번 찔러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검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 및 법의학 감정, 휴대폰 디지털 포렌식 결과 등을 토대로 A씨가 미리 인터넷으로 범행 장소를 검색해 답사하고, 흉기를 미리 준비해 피해자를 발견하자마자 살해했다며 계획된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일각에선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단순히 높은 형량으로 엄벌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범죄자에 초점을 맞춰 범죄행동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치료여부를 감시해, 범죄자를 치료해 재사회화하는 치료적 사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2021년 사법정책연구원이 편 ‘형사재판에서의 회복적·치료적 사법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저자인 박기쁨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정신장애 등을 가진 범죄자들에 대한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해 치료명령 등의 제도가 도입되기는 했으나 그 제도적 한계가 분명해 치료적 사법의 이념에 완벽히 부합하는 제도라고 보기 힘들다”고 짚었다.
이어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회복적·치료적 사법 이념에 기초한 형사조정제도나 약물치료법원, 정신건강법원 등을 운영한 결과 피고인 및 피해자 모두 기존의 형사사법절차와 비교해 보다 높은 만족도와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고, 재범률의 감소나 약물 사용 비율의 감소 등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A씨는 재판에 앞서 두 차례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6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