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TV를 틀면 셰프들의 모습과 요리하는 프로그램이 쏟아졌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요리 프로그램은 지금의 다양한 요리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시초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결과는 다양한 셰프를 양성해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TV를 즐겨보던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셰프의 꿈을 키워나가곤 했다. 1995 그로세리아의 황요한 셰프 역시 고등학교 시절, EBS에서 방영된 직업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요리하는 셰프의 모습에 매료됐고 그 모습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 셰프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르코르동블루 시드니 캠퍼스에서 유학하며 요리를 배웠으며, 스테이크 하우스의 오너 셰프로 10년간 경력을 쌓았다.
현재 황 셰프는 국내 호텔 최초의 그로서란트 ‘1955 그로세리아’와 호텔 연회장의 콜드 푸드를 담당하고 있다. 드레싱, 결혼식 코스 메뉴, 뷔페, 룸 어메니티, 기업 행사의 요리를 주로 담당한다. 황 셰프가 근무하는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1층의 1995 그로세리아는 이름에서부터 그로서란트라는 성격이 매우 명확하다. 그로서란트는 식재료를 뜻하는 ‘그로서리’와 ‘레스토랑’의 합성어다. 고객이 식재료 구입과 요리를 한 공간에서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고객 입장에서 내가 먹고 있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식재료, 소스, 오일은 무엇일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하여 음식점에서 재료까지 팔면서 그로서란트가 확산됐다. 최근 유통업과 외식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온라인 구매로 장을 보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식사하면서 식재료를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까지 할 수 있는 그로서란트는 온라인에서는 즐길 수 없는 체험형 공간으로, 고객들에게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1995 그로세리아의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스테이크다. 사실 스테이크는 어디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맛있기도 힘들지만 맛이 없기도 힘든 메뉴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테이크를 시그니처 메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황 셰프의 스테이크는 두툼한 고기를 그릴에 구워서 제공하는데 언뜻 보면 쉬운 것 같지만 불과 고기를 잘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 매우 어렵다. 두툼한 스테이크의 속까지 적절하게 익혀내면서 겉면은 바삭하게 만드는 정도를 찾는 것이 가장 숙제인데, 스테이크 하우스의 오너 셰프로 보낸 10년의 시간이 시그니처 메뉴로 자신 있게 스테이크를 얘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시간이 만들어주는 감각과 내공이 쌓여서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하면서 두툼한 스테이크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전복 파스타이다. 신종철 총괄 셰프의 전복 파스타를 기본으로 여러 번의 레시피 수정을 통하여 완성된 파스타이다. 전복 내장을 이용한 파스타이기 때문에 깊은 바다의 내음을 즐길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재료 특성상 신선한 전복을 완벽하게 조리해야만 해산물의 비린 맛을 없애고 풍부한 소스의 향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열을 가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스킬도 필요하다.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된 깊고 부드러운 맛의 전복 파스타는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요리다.
황 셰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직’이다. 같은 음식을 오랜 시간 동안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태해지고 집중도가 떨어지기 쉽다. 고객에게 선보이는 플레이트는 요리사에게는 하루에 만드는 수십 그릇의 음식 중 하나이지만 고객에게는 본인을 위한 단 하나뿐인 음식이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도 고객 입장에서 플레이트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따라서 매 순간 요리를 담을 때마다 레시피에 맞춰 정직한 식재료와 조리방법으로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마음으로 요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황 셰프는 요리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발전해왔다. 레스토랑 운영은 단지 음식만 맛있게 만들어 제공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계절별, 시기별, 사회적 트렌드와 고객의 연령, 성별에 맞춰 음식의 종류와 양, 담는 모양까지 변화를 줘야 고객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 고객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 황 셰프가 요리를 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연애 시절 레스토랑을 방문한 고객이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자녀를 데리고 다시 찾아오는 모습은 황 셰프에게 큰 자부심을 준다. 그 레스토랑이 그분들에겐 단지 음식을 먹는 공간이 아닌 삶의 한 부분이 되고 추억이 깃든 장소가 된 것이다. 스스로 만든 음식과 일하는 공간이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다시 찾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 황 셰프의 철학이자 목표다.
황 셰프는 상대방에게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가장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이 요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리를 통해서 스스로를 보여주기 위해서 계속 노력 중이다. 언젠가는 호텔 총주방장이 되는 것이 목표다. 호텔에서는 자신의 요리를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해서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고객들의 피드백을 바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