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설왕설래] 낙태죄 폐지와 국회 태만

지난 6월 말 유튜버를 통해 공개된 ‘임신 36주차 임신중절’ 경험담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스스로 24살이라고 밝힌 여성 A씨가 유튜브 채널에 ‘총 수술 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동영상이 꾸며서 만든 ‘주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보건당국 의뢰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해당 유튜버가 비수도권 거주 20대 여성임을 확인하고 유튜버와 낙태 수술이 이뤄진 수도권의 한 병원 원장을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임신 36주이면 출산을 한 달 앞둔 만삭 상태라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2021년에도 34주 태아 낙태 수술을 한 의사가 살인 혐의로 유죄선고를 확정받은 적 있다. 관건은 임신중절 당시 태아가 살아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느냐다. 살인죄는 생명을 앗아간 행위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34주 태아의 경우 제왕절개로 살아서 태어난 태아를 의사가 물에 넣어 질식사하도록 한 혐의가 입증됐다. 임신중절 자체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던 시절이 있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면서 헌법 불합치를 내리면서 법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낙태는 미국에서도 논쟁적 사안이다. 민주당은 여성의 선택권을 강조(Pro-choice)하는 반면에 공화당은 생명을 중시(Pro-life)하는 쪽이다. 2022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합법화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것을 놓고선 찬반 논쟁이 치열하다. 현재 미국에서 낙태 허용 여부는 주별로 제각각 판단하고 있다.

우리 국회의 태만과 직무유기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는 태아 생명 보호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최적의 해법을 마련하라면서 국회에 2020년 12월31일까지 말미를 줬다. 그러나 국회가 입법 보완을 등한시하는 바람에 낙태죄가 위헌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얼마 전 논란 속에 ‘대통령 탄핵 청문회’ 등을 강행한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의사진행 방식을 문제삼는 여당 측에 ‘선입선출’ 원칙을 내세웠다. 시한을 넘긴 법안 보완이야말로 법사위가 ‘선출’시켜야 할 ‘선입’ 현안이 아닌지 묻게 된다.


박희준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