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보리보다 쌀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보리는 익어도 뻣뻣하게 서 있지만 쌀(벼)은 여물면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온화하고 겸손한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안 그러면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 상진 스님은 우리 사회 곳곳에 갈등과 대립이 심하다고 우려하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에서 한 세계일보 인터뷰에서다.
상진 스님은 특히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줘야 할 책임이 큰 정치 지도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기만 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이 공약은 제대로 안 지키면서 맨날 싸우고 서로 갉아먹는 모습만 보여주니 국민들도 (갈려서) 싸우잖아요. 여야 정치인 모두 자신들의 소임이 뭔지 깨달았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소임’은 대단한 역할이 아니라 소일거리라도 남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이라며 “그런데 소임 하나 맡으면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상진 스님 본인도 총무원장 소임을 다하려고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전국 25개 교구에 3400여 사찰을 둔 태고종은 규모로만 보면 대한불교조계종 다음가는 불교 종단이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잇단 내분 사태로 위상 추락 등 위기 상황에 몰렸다. 태고종 종도(승려)들이 상진 스님을 ‘특급 소방수’로 선출한 이유다. 1991년 출가한 그는 잔심부름을 한 급사부터 시작해 총무원 문화·교무부장, 사무처장과 중앙종회의원, 청련사 주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취임 이후 최우선 과제인 종단 화합을 위한 행보에 나섰다. 낮은 자세로 전국 교구를 돌며 많은 종도와 소통했다. 아울러 종단 내 교구별, 세대별 입장 차이를 조율하며 반목 해소에도 힘썼다. 그 덕에 태고종 내부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진 스님은 “종단이 발전할 수 있었는데도 화합이 잘 안 돼 그러지 못했다. 다시 내홍에 휩쓸리면 우리 종단은 정말 재기가 어렵다”며 “(총무원장 권위와 사심을 앞세우지 않고) 종도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의견을 경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핵심 공약으로 지방 교구의 자율 운영 확립, 교육사업 확대, 요양원 등 승려복지 강화, 재정 자립 등을 제시한 바 있다. “하루아침에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고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어서 힘듭니다. 50%만 달성해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종단 내부의 뜻과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게 중요한 이유예요.”
조계종이 전담하는 불교 군종장교(군 법사·군승) 양성과 파견에 태고종 참여 의사도 분명히 밝혔다. 상진 스님은 “각 부대에 군 법사와 군종단이 부족하다고 들었다. 우리 종단에도 군승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이 많은데 조계종 승적만 가능하니 안타깝다”며 “불교 종단 전체가 군 포교를 할 수 있도록 군승 제도가 개선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총무원장 임기(4년) 종료 후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은지 물었다. “‘(상진 스님이) 종단 갉아 먹지 않고 발전을 위한 초석을 잘 다져놓았다’는 말만 들어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