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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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주민 내쫓아서 전셋값 폭등 막는다?”… 신도시 이주대책에 ‘시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 영구임대 재건축해 1기 신도시 이주주택으로 활용
임대주택에 이주민 수용해 인근 전셋값 안정 효과
주거 취약계층 내보내는 대책에 반대 여론도

정부가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재건축 가이드라인이 담긴 노후계획도시 정비기본방침을 발표했다. 전세시장에 갑작스러운 충격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이주대책도 포함됐는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노후계획도시 정비기본방침은 국토부 장관이 10년 단위로 수립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세우는 상세 계획인 노후계획도시 정비기본계획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LH 임대주택 내부 모습. 뉴시스

국토부는 오는 9월12일까지 기본방침안 관련 지자체 의견을 듣고 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위원회 심의를 거쳐 10~11월 중 기본방침을 최종 수립할 계획이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부 지역의 아파트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1기 신도시 이주대책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1기 신도시에서 2027년부터 매년 2만가구 이상이 착공에 들어간다. 재건축에 따른 이주수요가 몰리면 인근 전셋값이 들썩일 수 있어서다.

 

이주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는 신규 유휴부지 개발과 영구임대주택 재건축, 이주금융 지원 등을 담은 ‘순환정비모델’을 마련했다. 지역 내 유휴부지에 이주주택을 짓고, 인근 공공택지 물량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주주택으로 활용한 뒤에는 리모델링을 거쳐 신규 분양하는 사업모델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영구임대주택을 재건축해 이주주택으로 활용한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신도시 일대 빌라·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시스

국토부에 따르면 1기 신도시에는 13개 단지, 1만4000가구 규모의 영구 임대주택이 있다. 도심 내 우수한 입지에 임대주택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입주민을 기존 생활권 인근으로 이주시킨 뒤 이곳을 고밀 개발해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과거 영구 임대단지에 대해 인근 주민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는데, (임대주택을) 복덩이로 만들어 보자는 얘기가 있었다”며 “주상복합 형태로 지역 주민들도 활용할 수 있는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등을 넣을 수 있는 고밀 공간을 만들면 주거복지 제고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기 신도시를 정비하는 동시에 임대주택의 질 상향을 통해 주거복지까지 한꺼번에 잡기 위해 고심 끝에 나온 대책이지만, 일각에서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영구임대주택을 이주주택으로 활용하려면, 결국 임대주택 거주민을 어딘가로 보내야 한다. 이들을 위한 이주대책을 또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먼저 지어진 순환정비용 이주주택으로 보낸 뒤 추후 재건축된 임대주택에 다시 입주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변 시세의 30% 정도만 부담하는 주거 취약계층을 이주시키는 것은 임대주택 원주민은 물론, 사회적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뉴시스

정부 재정을 투입해 기존 거주지 인근에 이주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재건축 이후 임대주택으로 재입주할 때는 임대료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도 임대주택을 활용한 이주대책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1기 신도시 이주대책에 대한 뾰족한 대안이 없기에 영구임대주택 재건축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나온 것 아닌가 한다”며 “1기 신도시 이주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또 다른 이주민을 만든다는 것이기에 영구임대 입주자들을 어디로 이주시킬지가 먼저 세심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량의 이주수요가 발생한다고 모든 것을 공공주택으로 해결하겠다는 접근은 한계가 있다”며 “중대형 평형에 거주하시던 분들은 이주비 대출을 받아서라도 비슷한 임대주택을 찾아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