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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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상징부터 쓰임새까지… “소나무=으뜸나무”

선사∼조선시대 건축물 65곳 분석 결과
궁궐 등 주요 건축자재로 소나무 각광
정부 주도 아래 식재와 벌채까지 관리
유교적 상징·접근성 등도 영향 끼친 듯
전문가들 인식 변화·보전 방안 등 담아내

한국인과 소나무―소나무 선호의 역사 문화적 기원/ 배재수·김은숙·오삼언·배수호·서정욱·안지영/ 수문출판사/ 2만2000원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21일 동안 잡인의 출입을 금하고자 솔가지를 끼운 금줄을 치고 새 생명의 탄생을 알렸다.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때라 장수를 상징하는 솔가지를 꺾어 아이의 생명을 빌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뒷동산 솔숲은 놀이터가 되고 땔감을 해오는 일터가 되기도 했다. 소나무로 만든 도구와 농기구를 사용해 생활을 꾸렸다. 흉년이 들어 굶주림을 참을 수 없으면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먹었다. 명절 때는 송편, 송엽주, 송기떡, 송홧가루로 만든 다식을 즐겼다. 양반가에선 소나무가 그려진 십장생도 병풍을 쳤다. 선비로 행세하려면 송연묵으로 간 먹물을 묻힌 붓으로 일필휘지할 수 있어야 했다. 한세상살이 마감하면 송판으로 만든 관 속에 들어가 뒷산 솔밭에 묻혔다.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출생부터 죽음까지 늘 함께한 나무다. 남한 산림의 25%를 점령한 수종으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나무다. 북한 역시 전체 산림의 18%를 소나무가 차지한다. 남북 모두 수종 분포 1위가 소나무다.

강원 양양군 하조대 소나무.

구석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주거지 또는 사찰, 관아, 궁궐 등 건축물 65곳에서 획득한 5848점의 목부재를 조사한 결과, 소나무는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 중요한 자재로 자리매김했다. 선사시대 주거지에서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5%였다. 이후 삼국시대 6%, 고려시대 71%, 조선 전기와 중기 73%, 조선 후기 88%로 끊임없이 증가했다.

소나무가 주요 건축재료로 등장하기 시작한 고려시대에 소나무는 건축뿐만 아니라 강한 수군 그리고 해양무역에 필요한 선박 제조에도 널리 쓰였다. 완도선, 달리도선, 십이동파도선, 태안선, 마도 1∼4호선 등 서해와 남해에서 인양된 고려의 선박에는 모두 소나무가 사용됐다. ‘고려사’에는 공적 목적이 아닌 경우 소나무 벌채를 금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 소나무는 더욱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모든 산림정책이 소나무 위주로 짜였다. 조선은 초기부터 정부 주도 아래 소나무 식재와 관리를 적극적으로 시행했다. 소나무가 변치 않는 절의의 상징성을 지녔다는 점과 동시에 궁궐 등 국가 건설, 전함을 만드는 데 몹시 중요한 자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조선 전기와 중기엔 사찰에 쓰였지만 후기엔 대부분 궁궐을 짓는 데 사용됐다.

강원 강릉시 대관령 ‘금강소나무숲’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재 목조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은 총 256건이다. 이 가운데 궁궐 건축물은 24건인데, 모두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졌다. 궁궐 건축 자재 1만994점을 대상으로 수종을 분석해보니 98.3%인 1만809점이 소나무였다. 소나무는 조선 후기 등장한 소나무 정책, ‘송정(松政)’에 힘입어 이렇게 궁궐의 나무가 되었다.

한국인들은 수많은 나무 가운데 소나무를 가장 좋아한다. 산림청이 1991년부터 2023년까지 실시한 8차례의 수종 선호도 조사에서 소나무는 2, 3위권인 단풍나무와 느티나무를 큰 폭의 격차로 누르며 1위를 차지했다. 여론조사 자료는 보기 없이 조사자가 직접 응답자에게 “귀하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얻은 결과다.

 

“한국인이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①모든 나무 가운데 소나무가 으뜸이라는 유교적 상징성 ②조선 후기 송정으로 대표되는 국가로부터 강제된 소나무의 중요성 ③조선 후기 온돌의 전국적 보급과 가정용 연료재의 과도한 채취로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을 만큼 많은 소나무의 접근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백목지장(百木之長)’, ‘세한송백(歲寒松柏)’, ‘천자(天子)의 나무’로 대표되는 소나무의 긍정적 상징성은 조선의 성리학적 질서에 따라 ‘많은 나무 중 소나무가 으뜸나무’라는 위치를 부여받았고, 교육과 문화적 계승 과정을 거쳐 쉼 없이 재생산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으뜸나무’라는 상징성은 한국인이 소나무를 좋아하는 필요조건이었다.”(23∼24쪽)

배재수·김은숙·오삼언·배수호·서정욱·안지영/ 수문출판사/ 2만2000원

역사학, 생태학, 유전학, 연륜연대학, 행정학, 북한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모여, 한국인이 소나무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 소나무 사용의 변천, 소나무가 으뜸나무·중요한 나무·늘 보는 나무가 된 이유를 밝혀놓았다. 저마다 전공 분야가 달라도 남북한 모두 소나무를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과 그 원인, 변화 과정을 정리했다.

책은 우리의 소나무 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한국인이 소나무를 좋아한다는 결과 해석이 아니라, 우리가 소나무를 좋아하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조선 후기 산림정책, 사회경제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 시각을 더했기 때문이다.

연구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1장과 본문 4장, 결론 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2장은 한국인 소나무 이용의 역사적 변천을 다룬다. 특히 조선 후기에 소나무 이용이 급격하게 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불어,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산림정책의 변화와 소나무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천을 정리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분단된 현실을 고려하여 북한의 소나무 인식을 보론(補論)으로 함께 다루었다. 북한은 2015년 나라를 대표하는 나무인 국수(國樹)로 소나무를 지정했다. 3장부터 5장까지는 소나무가 한국인에게 ‘으뜸나무’가 되었던 역사·문화적 기원을 소개한다. 마지막 6장은 소나무숲이 쇠퇴하는 자연천이 과정, 산불과 소나무재선충병 등에 취약한 소나무의 현재 상황을 고려해 소나무의 이용과 보전 방안을 모색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