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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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사회적 재분배, 불평등 해소의 역사

20C초 佛 상위 1% 사적 소유 65%
사회적 국가 기조에 누진세 도입
1980년대 20% 이하까지 떨어져

부국의 번영도 빈국 없이 불가능
다국적 기업·억만장자가 낸 세금
모든 나라·시민이 누릴 수 있어야

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전미연 옮김/ 그러나/ 2만2000원

 

2020년 유럽의 부유한 상위 10%는 전체 소유(부동산·사업·금융 자산 등)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가난한 하위 50%의 소유는 5%에 불과하다. 미국은 더 심각하다. 가난한 하위 50%가 고작 2%를 갖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세상은 불평등으로 가득 찬 것만 같다. 하지만 이는 인류가 평등을 향해 전진해 그나마 나아진 수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신간 ‘평등의 짧은 역사’에서 18세기 말 이후 평등이 확대된 역사를 짚으며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가 이를 가능케 했음을 논증한다.

같은 강남 아래 두 풍경 2020년 유럽의 부유한 상위 10%는 전체 소유의 55%를 차지하고 있지만 가난한 하위 50%의 소유는 5%에 불과하다. 이조차도 지난 2세기 동안 불평등이 완화된 결과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고가 아파트와 개포동 구룡마을.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책에서 피케티는 자신의 대표작이자 두꺼운 ‘벽돌 책’인 ‘20세기 프랑스 상위소득’ ‘21세기 자본’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내용을 압축하고 그간 불평등을 연구하며 얻은 통찰을 제시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프랑스의 상위 1%가 차지한 사적 소유는 1810년 전체의 45%에서 1차 세계대전 직전 65%까지 치솟았지만, 1980년대 초반 20% 이하까지 떨어졌다. 최근에는 다시 증가해 2020년 기준 25%다. 상위 10%로 범위를 넓히면 그 비중은 1차 세계대전 직전 85%에서 2020년 55%로 내려왔다.

불평등 감소의 혜택은 중위 자산 계급에 돌아갔다. 중위 40%의 계급이 20세기 초 전체 자산에서 차지한 몫은 13%에 불과했으나 1980년대 초 40%로 커졌다. 반면 하위 50%의 소유 비중은 19∼20세기 초반 2%에서 오늘날 약 5%로 여전히 미미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1900년대 초중반까지 사회 전반의 불평등은 여전했다. ‘대규모 재분배’가 일어난 것은 1914∼1980년이다. ‘사회적 국가’ ‘조세 재정 국가’가 강력하게 부상하고, 소득과 상속에 강력한 누진세를 도입한 덕분에 변화가 가능했다.

토마 피케티/ 전미연 옮김/ 그러나/ 2만2000원

20세기 초반 유럽과 미국에서 총 세수는 국민 소득의 10% 이하였다. 이 비중이 1914∼1980년 미국에서 3배, 유럽에서는 4배로 증가했다. 늘어난 세수는 교육과 의료에 대대적으로 투입됐고, 교통과 공동체 인프라, 퇴직 연금, 고용보험 등에도 쓰였다. 사회복지 지출의 최대 수혜자는 민중계급과 중위계급이었다.

누진세도 불평등을 완화했다. 20세기 초까지는 가난할수록 세금 부담이 더 컸다. 이후 누진세가 도입되면서 미국에서는 연방 소득세 최고 세율이 1913년 7%에서 1918년 77%, 1944년에는 94%까지 올라갔다. 피케티는 “누진세 효과는 점진적인 부의 탈집중화, 중위 자산 계급이 최상위 자산가 계급을 대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이런 분석에 기반해 그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를 확대하는 것이 평등을 향한 여정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분권화, 자주 관리, 환경주의, 다문화에 기반한 민주적 사회주의가 정착하면 세계가 더 해방되고 평등해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흥미로운 주장은 ‘모두를 위한 상속제도’다. 성인 1인당 평균 자산의 60%에 해당하는 최소한의 상속 금액을 25세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 지급하자는 것. 그 재원은 국민 소득의 약 5%에 해당하는 금액을 ‘누진 재산세’와 ‘누진 상속세’로 걷어 마련하면 된다고 말한다.

피케티는 한 국가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불평등한 부의 분배도 지적한다. 유럽과 미국의 부 축적에 핵심 역할을 한 것은 노예제와 식민주의다. 이들 국가는 노예와 식민지를 착취했을 뿐 아니라 노예제를 종식시킬 때도 노예들에게 전혀 보상하지 않았다.

노예 숫자가 전 국민의 90%에 달했던 아이티(과거 생도맹그)가 대표적이다. 아이티는 프랑스에서 독립하면서 1825년 당시 국민소득의 300%에 달하는 돈을 프랑스에 갚기로 했다. 아이티는 1950년대 초까지 이자를 더해 이 돈을 꼬박꼬박 상환했다. 아이티의 발전은 이 배상금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노예제 철폐 이후에도 여전히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에 강제노동을 강요하며 착취했다. 피케티는 프랑스인들이 툭하면 ‘공화주의적’ 유산을 입에 올리며 자신들은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예외라고 믿으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질타한다.

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와 시민이 다국적 기업과 억만장자에게서 거둔 세금에 대해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나라 없이는 부유한 나라의 번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구는 물론 일본·중국의 부의 축적 또한 국제 노동분업과 전 지구적인 천연자원의 개발, 인적 자원의 착취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