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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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뜨거운 막걸리 인공 향료·색소 허용… 알 권리 측면에서 접근해야 [이 기자의 술래잡기]

‘술’은 세대와 연령, 성별을 막론하고 사랑받아왔다. 최근에는 ‘핫’한 걸 넘어 ‘힙’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술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특히 최근 변화하는 대중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술이 나오고 있다. [이 기자의 술래잡기]는 그러한 술에 대해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고, 귀로 듣고 난 뒤 적는 일종의 체험기다. 특색있는 양조장이나 술, 그 술을 빚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또한 전국에 있는 양조장과 그 주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2021년 6월15일 문화재청은 ‘막걸리 빚기’를 국가무형유산(당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이제 막 갓 빚어냈다는 막걸리의 어원과 함께 물과 쌀, 누룩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며 순수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과 달리 기획재정부는 최근 ‘2024년 세법 개정안’에 주세법 시행령을 완화해 향료와 색소를 넣은 술을 ‘탁주’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막걸리. 뉴시스

◆인공 향료·색소 허용 논란

 

현재 탁주의 제조원료는 △녹말이 포함된 재료 △국(누룩) △물 △당분 △과일·채소류 △아스파탐 등 첨가제로 한정돼 있다. 여기에 향료·색소를 추가하는 등 탁주에 허용 가능한 첨가물을 확대해 주는 것이다.

 

현재 막걸리에 향료나 색소를 넣으면 탁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또 ‘막걸리’나 ‘탁주’라는 이름을 쓸 수도 없다. 예컨대 알밤 막걸리가 아닌 ‘알밤주’, 땅콩막걸리가 아닌 ‘땅콩주’ 등으로 표시돼 판매됐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이제는 인공 색소와 향료를 넣어도 ‘막걸리’라고 표기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주세도 낮아져셔 가격 경쟁력도 강화된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을 살리자’는 입장에선 심각한 문제가 된다.

 

가뜩이나 저가 막걸리에 수입 쌀 및 인공감미료가 들어가는데, 향료와 색소를 허가한다면 막걸리는 물론 전통주 자체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전통주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오히려 이번 개정안은 가치를 낮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최근 한국가양주연구소를 비롯한 한국술 교육훈련기관 협의회 14곳 및 및 전통주 양조장 110곳은 해당 내용에 대한 반대 의견을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전달했다. 

 

정부 부처 간 칸막이도 문제다. ‘막걸리 빚기’의 순수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며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한 문화체육관광부와 달리 기재부는 그 순수성을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형 막걸리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환영하는 편이다. 

 

언제든지 대량으로 인공 향과 색을 넣어 제품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막걸리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 등으로 가격도 내려갈 수 있다.

 

기타주류(막걸리 등 발효주)는 원가(과세표준)의 30%를 주세로 부과하는 반면, 탁주는 750㎖ 당 33.3원이다. 여기에 기타주류는 10%의 교육세까지 추가된다.

 

즉 부가세까지 포함해 750㎖ 원가 1000원(과세표준) 제품은 기타주류일 때 공장도가 1573원이다. 반면 막걸리가 되면 1137원으로 내려갈 수 있다.

 

◆라벨에 표기하는 일본

 

이에 반해 일본은 아예 ‘합성’이라는 단어를 통해 구분하고 있다.

 

알코올에 당류, 유기산, 아미노산 등을 넣어 청주와 같은 풍미를 낸 술을 ‘합성청주(合成清酒)’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 일본식 청주인 사케도 쌀의 정미율이 30% 미만인 경우에는 ‘보통주(普通酒)’라고 부르고 있다. 

 

소주(증류주)는 자국 농산물을 사용해 발효 증류한 경우를 ‘본격소주(本格焼酎)’라고 정리했다.

 

주정을 섞은 소주를 ‘혼화소주(混和焼酎)’라고 라벨 정면에 표기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전통주라는 의미의 ‘일본주(日本酒)’라는 항목을 신설했는데, 이것은 일본산 쌀을 사용하고, 일본 국내에서 양조한 것만 인정한다.

 

◆막걸리 변화, 해법은

 

인공 향료와 색소를 넣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개정안에 소비자가 인공 향료와 색소의 함유 여부를 알고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빠졌다는 점이 문제다.

 

일본처럼 소비자들이 제대로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별도의 표기가 필요하다.

 

주류문화칼럼니스트이자 세종사이버대 명욱교수는 “소비자가 인공 향료와 색소의 함유 여부를 알고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빠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소비자들이 제대로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규정으로 ‘기타 막걸리’ 또는 ‘향료, 색소 가미’ 등을 표기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술이 무조건 고급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인공 향과 색으로 범벅이 된 술을 무분별하게 마시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 잔이라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맛을 보는 것이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정부도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