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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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 정치 신인의 최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올해 1월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이 예고된 연방의회 의사당 본회의장. 얼마 전 하원의원 직위를 잃고 의회에서 퇴출당한 조지 산토스(36)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직 의원이 아닌데도 당당히 본회의장에 입장한 산토스는 활짝 웃으며 다른 의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기자들이 관심을 보이며 취재에 나서도 개의치 않고 되레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향해 팔을 쭉 뻗어 손가락으로 렌즈를 가리키는 등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미 언론에 따르면 현직이 아닌 전직 의원들에게도 의사당 회의장 방문이나 의원 전용 체육관 및 식당 이용 등 특권이 부여된다고 한다. 이날 산토스는 전직 의원 자격으로 본회의장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다시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해 정계 복귀의 꿈을 이루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조지 산토스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거짓말로 유권자들을 속인 사실이 드러나 2023년 12월 의원직 제명 처분을 받았다. AP연합뉴스

산토스는 2022년 11월 하원의원 총선거 당시 공화당 후보로 뉴욕주(州) 롱아일랜드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30대의 정치 신인이고 보수 성향인 산토스가 어떻게 진보 색채가 강한 뉴욕에서 의원이 될 수 있었을까. 브라질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흙수저 출신인 그가 써 내려간 성공 스토리가 모든 미국인이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에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산토스는 선거운동 당시 “뉴욕 명문 바루크 칼리지를 졸업하고 월가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에서 일했다”고 자신의 이력을 소개했다. 집안 내력에 대해선 “조부모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독일의 탄압을 피해 브라질로 망명한 유대인”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에 근무하다 2001년 9·11 테러 때 희생됐다”는 고백은 뉴욕 주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하지만 이 모두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조사 결과 산토스는 대학을 다닌 적도, 금융사에 입사한 적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조부모는 2차대전 이전 브라질로 망명한 유대인이 아니었다. 9·11 테러 희생자 명단에 산토스 어머니 이름은 없었다. 그는 선거운동을 하며 “동물 구조 단체를 운영한다”는 말로 반려동물 애호가들의 환심을 샀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이웃의 아픈 반려견 치료에 사용하겠다”며 온라인 모금을 해 돈을 챙긴 뒤 개인 신용카드 대금 결제, 보톡스 시술, 여행 등 엉뚱한 용도에 다 썼다. 성난 유권자들은 물론 공화당 다른 당선인들조차 “의원 선서 전에 스스로 그만두라”고 촉구했으나 산토스는 2023년 1월 의원 선서에 동참했다. 결국 그해 12월 의원 제명안이 하원을 통과하며 비로소 의원직을 상실했다.

거짓말쟁이 조지 산토스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을 피노키오에 비유한 미니어처가 진열대에 전시된 모습. AFP연합뉴스

산토스가 아직 하원의원 신분을 유지하던 시절 수사에 착수한 연방검찰은 그를 사기 등 23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기소 이후 “나는 잘못한 일이 없다”며 완강히 버텨 온 산토스도 막상 법정 출석이 다가오자 중형 선고가 두려웠던 걸까. 17일 미 언론은 9월 재판 개시 본격화를 앞두고 산토스가 그간의 입장을 바꿔 혐의를 인정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해 형량을 가급적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재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들이 전부 유죄 선고를 받으면 산토스는 최장 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한다. 제명 후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전직 의원의 특권을 누리며 정계 복귀 의사를 밝혀 온 이 뻔뻔한 젊은이의 최후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