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가 지나면 마법처럼 더위가 가신다는 이른바 ‘처서 매직’이 올해는 나타나지 않을 전망이다. 19일 오후 제주와 남해안을 시작으로 처서인 22일까지 전국 곳곳에 산발적으로 강한 비를 내리겠지만, 무더위를 식히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가 그친 뒤 발생한 습한 수증기가 높은 기온과 맞물리며 이달 하순까지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8일 기상청에 따르면 19∼20일 제주에 최대 100㎜ 이상, 부산·울산·경남 30∼80㎜의 거센 비가 예고됐다. 19일 오전 제주에서 시작한 비는 20일 남부 전체로 확대되고, 중부 일부 지역에도 5∼2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21일부터 중국 산둥반도 남단에서 저기압이 북동진하며 처서인 22일까지 전국 곳곳에 비가 예보됐다.
통상 절기상 처서가 되면 더위가 한풀 꺾이는 양상이 나타났지만 기상청은 “이번 강수가 더위를 완화하는 분기점 될 거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오히려 비가 그친 뒤 폭염이 다시 시작할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이 같은 관측은 대만 동쪽에서 북상하며 한반도에 비구름을 몰고 올 열대저압부를 비롯한 최근 동아시아 기압계 배치 상황과 관계가 깊다. 열대저압부란 태풍으로 발달하기 전 단계의 약한 열대저기압을 말한다. 열과 수증기를 머금은 열대저압부의 열기가 한반도에 고스란히 전달돼 비가 내리기 전 더위가 더욱 심해지는 것은 물론, 비가 그치고도 고온다습한 더위가 이어질 전망이다.
비에 의한 기온 하강 폭도 제한적이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비가 지속해서 내리기보다 쏟아졌다 그치기를 반복해 열사 효과로 (강수 진행 중에도) 낮기온이 오르는 지역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비로 인해) 폭염특보가 경보에서 주의보 수준으로 완화될 가능성은 있지만 30도 이상 웃도는 더위는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대저압부가 한반도로 고온다습한 수증기를 불어넣으며 푹푹 찌는 열대야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됐다. 이에 곳곳에서 열대야 연속 일수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는 신기록 행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16일 ‘118년 기상관측 사상 가장 긴 열대야’ 기록을 경신한 이후에도 잠 못 드는 서울의 뜨거운 밤은 이틀 더 이어져 지난달 21일 이후 28일째 열대야가 나타났다.
열대야 발생 일수도 역대 최장 기록을 넘보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에서 열대야가 나타난 날은 총 31일로 역대 세 번째로 많다. 역대 2위인 2016년 발생 일수(32일)를 따라잡고 1위인 1994년(36일) 기록도 깰 가능성이 크다. 밤사이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날을 열대야로 분류하는데, 기상청이 이날 발표한 중기예보에 따르면 28일까지 서울 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일 것으로 관측됐기 때문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현재 더위는 동해상에 자리한 고기압에서 동풍이 불면서 백두대간 서쪽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22일 강수가 끝난 후에는 남서풍이 불어 들면서 전국이 다시 뜨거운 열기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며 “계속 뜨겁고 습한 공기가 유입될 수 있는 기압계 상황이기 때문에, 더위가 언제 꺾일 것이라고 얘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면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17일까지 올해 온열질환자는 사망자 24명을 포함해 2741명이다. 13일 충남 예산 한 농장에서 감자 선별 작업을 하다 열사병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된 40대 외국인 근로자 A씨가 18일 끝내 사망했다.
재산 피해 규모도 불어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올 들어 전날까지 양식장에서 폐사한 넙치 등은 약 140만마리, 피해 어가는 127곳에 달했다.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도 90만여마리로 늘었다.
기록적 폭염에 기상청은 사상 처음으로 ‘폭염백서’를 내놓기로 했다. 기상청은 연내 발간을 목표로 폭염백서 작성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기상청이 장마나 태풍, 엘니뇨 등에 대해 백서를 낸 적은 있지만 폭염백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백서에는 폭염이 발생하는 원인과 구조, 중장기 전망, 폭염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 등이 담길 예정이다.
올여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상고온 현상이 두드러진다. 올해 7월은 지구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됐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지난달 지구 표면 온도 평균이 175년 관측 역사상 가장 높은 17.01도로 측정됐다고 17일(현지시간) 밝혔다. 올해 1∼7월 지구 표면 온도 평균 역시 15.08도로 20세기 평균(13.8도)보다 1.28도 높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NOAA 산하 국립환경정보센터(NCEI)의 전망에 따르면 2024년이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확률은 77%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