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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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더 내고 아들은 덜 내고… '尹정부 연금 개혁' 이번엔 성공할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대 간 형평성·지속 가능성 초점
그동안 여론 눈치 공 넘기기 급급
정치권 셈법에 좌초 가능성도 커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말 또는 내달 초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연금 도입 이래 모든 정부가 국민연금 개편을 추진했지만, 세대에 따른 보험료율 인상 차등 방식을 검토하는 건 이례적이다. ‘연금 개혁은 정권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적 저항이 큰 가운데 청년층의 반발이 특히 거센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가운데)이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중앙노인종합복지관에서 ‘노년층 대상 국민연금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제도 정착을 위해 초기 가입자일수록 ‘덜 내고 더 많이 받는’ 구조로 설계된 데다 ‘저출생 고령화’ 현상이 심해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고갈 시점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연금개혁이 하루 늦어질 때마다 기금 손실이 1000억원씩 늘어나는 상황이다.

 

여야 모두 기금 고갈을 우려하며 이를 늦추는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하고 있어, 제도 변경시 아랫 세대일수록 윗세대보다 많은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세대 간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 정부가 세대에 따른 보험료율 인상 차등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방식이고 능력만큼 부담하는 사회보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뉴스1

◆연금개편, 어떤 방식이 공정한가

 

정부는 세대별 보험료율(내는 돈) 인상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연령과 관계없이 ‘보험료율 9%’가 일괄 적용된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가입자들이 ‘더 내도록’ 하는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때 목표치를 한 번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 세대에 따라 ‘인상 속도’를 조절해 청년층의 부담을 상대적으로 줄여주자는 게 정부 아이디어다. 예를 들어 보험료율을 13∼15%로 인상할 경우 장년층은 매년 1%포인트씩 인상하고, 청년층은 매년 0.5%포인트씩 인상해 목표 보험료율 인상 시기를 달리하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할 연금개혁안은) 세대 간 형평성 제고를 위해 젊은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고 연금을 곧 받게 될 사람들은 좀 더 부담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 복무자와 출산 여성에 대한 연금 혜택 강화도 개혁안에 포함될 예정이다. 군 복무 기간 중 연금에 가산해주는 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군 복무 기간 전체로 확대하고, 둘째 자녀 출산 때부터 인정해주던 ‘출산 크레딧’(연금 가입 기간 12개월 가산)도 첫째 아이 출산 때부터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군 복무자와 출산 여성 대부분이 20·30대인 만큼 청년층의 연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차원이다.

 

출산율과 기대수명 등 사회적 변수에 따라 ‘내는 돈’과 ‘받는 돈’을 조정하는 ‘자동 재정 안정화 장치’ 도입도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개편을 통해 기금 고갈 시점을 2055년에서 30년 이상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갈수록 미래세대 부담 커져

 

관건은 여론이다.

 

국민연금 개편 논의를 할 때면 세대를 불문하고 반대 여론이 끓어오른다. 연금 수급을 목전에 둔 장년층은 소득보장 수준이 낮아지는 걸 우려하고,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청년층은 비용 부담 심화와 세대 간 불공정성을 호소하면서다.

 

하지만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모든 세대가 ‘폭탄’을 안게 된다. 제도를 방치해 예정대로 2055년 기금이 고갈되면 국민연금은 지금처럼 국민연금기금이 남은 돈을 운용해 수익을 보태는 ‘적립식’이 아니라, 건강보험처럼 매년 그해 걷어 그해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전환된다.

 

이 경우 쪼그라든 생산가능인구와 확 늘어난 고령층의 인구 불균형으로 인해 ‘내는 돈’이 늘어나도 ‘받는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청년층은 높은 사회보험료율에 허리가 휘고, 노년층은 제도의 혜택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갈수록 청년 세대의 부양 부담이 커지는 만큼, 이들을 배려하는 제도 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치권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원본부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연금 개편 안 한 文정부, 尹정부는? 

 

문제는 정치권의 능력과 의지다.

 

제도 도입 이래 김영삼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3%→6%로 인상했고, 김대중정부는 이를 9%로 높였다. 노무현정부는 ‘소득대체율’(받는 돈) 60%→40% 인하, 박근혜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사활을 걸고 보험료율을 18%로 높였다. 이명박정부와 문재인정부는 연금개혁을 하지 않았다. 국민연금만 놓고 보면 노무현정부 이후 손을 놓은 셈이다.

 

현 정부도 지난해 10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발표 당시 단일안을 내지 않고 국회로 공을 넘기며 사실상 국민연금 개혁을 회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1대 국회 종료를 앞둔 지난 5월 말, 여야가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 합의를 목전에 뒀을 때도 대통령실과 여당이 22대 국회로 논의를 미루며 무산됐다.

 

현재 여야 모두 연금개혁 필요성을 외치고 있지만, 정치적 셈법을 우선하는 정치권의 생리상 ‘군불 때기’만 하다가 좌초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많다. 이번에도 연금개혁에 실패할 경우 윤석열정부는 이명박∙문재인정부에 이어 연금개혁을 하지 않은 세번째 정부가 된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