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 동광장 건너편은 몇 년 전부터 ‘핫플레이스’가 됐다. 대전전통나래관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포진한 옛 일본식 가옥들은 음식점과 카페가 됐다. ‘대전의 익선동’, ‘뉴트로 성지’로 불리며 소셜미디어(SNS) 입소문을 탔다. 주말엔 이곳을 찾는 이들로 왕복 4차선 도로 양옆은 주차로 몸살을 앓는다.
대전 동구 소제동 이야기다. 현재 성심당이 있다면 앞서서 소제동이 있었다. 소제동은 대전 1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동네이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하면서 대전이 철도교통 중심지로 성장하자 일본 철도공사 종사자들이 소제동에 관사를 짓고 거주했다. 한때 100개 넘는 관사가 있었지만 광복과 도시화 등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빈집이 늘었다. 소제동의 슬럼화는 가팔랐다. 2017년엔 빈집률이 45%로 절반에 달했다.
소제동이 뜨기 시작한 건 이쯤이다. 서울의 부동산임대업체 ‘익선다다’가 소제동을 점찍으면서다. ‘익선다다’는 낙후됐던 서울 익선동의 한옥단지를 사들여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개조해 익선동을 연간 270여만명이 방문하는 동네로 만들었다. 익선다다는 ‘소제호 프로젝트’로 소제동 빈집 30채를 매입해 이 중 10채를 카페, 음식점 등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그쳤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 사이에 입소문이 나 수익을 창출하는 데엔 성공했으나 지역주민은 외면당했다. 주민과의 연대 없는 소제동은 그저 ‘철도관사촌’에서 ‘카페촌’이 됐을 뿐이다. ‘지역가치를 찾는 마중물이 되겠다’던 익선다다는 2022년 이곳을 떠났다. 남은 건 폭등한 부동산 가격과 임차인을 찾고 있는 일부 카페이다. 외지인에 의해 숨이 불어넣어진 과거의 소제동은 현재에서도 외지인에 의해 소생할 뿐이다.
소제동은 무얼 놓쳤나. 충남 공주 제민천마을이 있다. 이곳 역시 옛 충남도청사 이전 등 세월 속에 공동화 현상을 오래 겪었다. 2013년 외지인이 차린 카페 ‘루치아의뜰’이 터를 잡고, 2018년 민간기업 퍼즐랩이 한옥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 ‘봉황재’ 문을 열었다. 카페·책방·술집은 골목과 골목을, 주민과 주민을 잇는다. 게스트하우스와 호텔도 생겼다. 각양각색의 가게가 들어선 마을백화점은 동네 주민과 외지인을 연결해주는 커뮤니티다. 퍼즐랩이 제민천마을에 정착하면서 본 가능성은 지역공동체였다.
봉황재가 들어선 지 5년이 지난 지금, 제민천의 시간은 다시 흐르고 있다. 2021년 퍼즐랩이 진행한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거쳐간 142명 중 20여명의 청년이 제민천에 남았다. 이들은 마을에서 창업한 곳에 채용되거나 창업·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민천마을의 확장성은 저렴한 임대료도, 여유로운 도시 풍토도, 다른 지역과의 지리적 접근성도 아닌 주민들과의 융화에 있었다. 제민천에 정착한 박진서(28·대구 출신)씨는 “가장 마음이 동한 건 마을 사람들”이라며 “마을의 발전 가능성을 발견한 동시에 나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주민이 배제된 민간자본의 도시재생엔 한계가 명확하다. 멈춘 시간을 흐르게 하는 건 지역민과의 소통에 달려 있다. 제민천엔 있지만 소제동엔 없었던 것, 소제동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