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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제주연구원 박사, 출근길 쓰러져 뇌출혈… 동료들 "재임용 탈락 압박" 주장

연구직 박사 출근길 쓰러져 사경 헤매
일부 연구직 스트레스 질환에 장기 병가도
“인사 규정·과제 심의 강화 재임용 탈락 압박”
연구원 “특정인 탈락 시도 있을 수 없는 일…쾌유와 도울 방안 최대한 강구”

제주도가 출연한 종합정책 연구기관인 제주연구원 연구직 박사가 최근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 몇몇 연구직은 스트레스성 질환에 장기 병가를 냈다. 일부 연구원들은 재임용 탈락 압박과 과중한 업무가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50대 선임연구위원 A씨가 지난달 25일 아침 출근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화장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A씨는 뇌출혈 진단을 받고 4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한달 가까이 입원 중이다.

제주연구원 전경.

또 다른 연구직은 안면신경마비 증세로 장기간 치료를 받기 위해 병가 중이다. 다른 연구직은 스트레스·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건강 악화를 호소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연구원은 양덕순 원장 취임(2022년 9월) 이후 재임용 규정을 강화했다. 

 

연구원 인사관리규정에 따르면 연구직(부원장, 정책연구실장, 연구기획부장은 제외)에 대한 근무성적평정 결과, 2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은 자는 반드시 인사위원회에 회부해야 하고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재임용하지 않을 수 있다. 단, 2년의 평정기간 중 1회 8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자는 예외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예외 규정이 종전에는 70점 이상이었는데, 80점 이상으로 강화했다.

 

근무성적평정은 정량평가 80%, 정성평가 20%로 이뤄진다. 상대평가 방식으로, 100점 만점의 경우 정성평가 20점은 원장과 연구실장 등의 평가가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연구직들이 재임용 탈락 부담과 업무 과중 등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부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모든 연구진(정규직 연구원)은 자신들이 작성한 기본과제, 용역과제 등을 작성해 사전 연구·용역심의위원회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평가는 내부 연구진(원장, 부원장, 연구실장, 각 부서장)이 참여한다.

 

익명을 요구한 연구원은 “연구·용역심의위원회에서 비전공자가 다른 분야 과제 평가 심의를 하다보니 심의 결과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않다”라며 “심의 결과 반려(재심의)·부결이 잦다 보니 연구직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A씨의 경우 지난해에는 안식년이어서 평가에서 제외됐고, 2022년 최하위 등급을 받아 올해도 최하위 등급을 받을 경우 재임용 탈락 압박으로 불안감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쓰러지던 날은 용역심의위원회 재심의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연구원은 지난 1일 A씨와 같은 분야 부연구위원 공개채용 공고를 내 재임용 탈락을 기정사실화 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구원은 “채용공고는 6월 말 연구원 정년퇴직으로 결원이 발생하자 7월부터 제주도와 협의해 채용절차를 진행한 것이며, 해당 분야는 충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결정했다. A 박사의 거취와는 전혀 무관하다”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6월 말 정년퇴직한 연구원의 경우 같은 분야 연구직을 퇴직 3개월 전인 지난 3월에 채용을 완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연구원은 “전국 시도 연구원 중 제주와 전북만 노조가 없고 노사협의회가 구성돼 있다”라며 “노조 설립을 추진했었지만, 복수 노조 설립이 뻔해 무산된 적이 있다”라고 전했다.

 

제주연구원은 “특정 연구원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려는 시도는 있을 수 없다. 규정 상 근무성적평정 결과 재임용 탈락 대상이어도 구성원의 50%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연구원 과제보고서의 질적 향상을 위해 평가와 인사 규정을 강화했다”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A 박사가 쓰러진 이유가 연구원 측 일부 책임론 주장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한다. A 박사의 쾌유가 우선이다. 연구원에서 도울 수 있는 최대한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제주연구원은 본원 기준으로 전체 직원 39명 중 연구직이 23명이다. 정책과제, 현안과제, 공모과제, 기본과제, 수탁과제, 정책이슈브리프, 협약과제, 공동과제, 미래기획과제 등을 수행한다. 연구실적을 보면 2019년 151건, 2020년 133건, 2021년 141건, 2022년 145건, 2023년 122건이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