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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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속 관계 형성… 예배당서 ‘나’를 만나다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41) ‘세상을 연결하는 작은 교회’ 하양무학로교회

‘김수근 제자’ 승효상, 새 예배당 등 설계
창문 등 없이 도로 기준 가장 안쪽 배치
야외 예배 공간, 주민 휴식 장소 역할도
‘다방 물볕’에선 이웃 간 친목 도모 가능

스님 시주와 30명 헌금 모아 성전 건축
신부 ·스님 등 준공식 참석 종교 화합
새 예배당 어둠 가득… 내면 성찰 기회
옥상 위치 기도실, 하늘 향한 구조 눈길

가끔 용도가 바뀐 건물을 가면 이전 용도였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특히 과거 교회였지만 지금은 카페나 음식점으로 쓰이는 건물에서 교회였을 당시의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손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삼삼오오 모여 있는 카페나 음식점과 달리 교회는 모든 신도들이 목사를 쳐다보는 일방향적인 구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예배당은 교회와 마을의 배경이 되어준다.

목사가 서 있었을 강단의 위치를 찾으면 그다음 생각해 보는 건 그 뒤에 있었을 십자가다. 대중이 찾는 카페와 음식점에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에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한 공간에서 십자가는 십중팔구 떼어진다. 그럼, 교회와 다른 공간을 구분 짓는 건 결국 강대 위에 걸린 십자가일까?

그런데 많은 종교에서 신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십자가가 있는 교회뿐만 아니라 십자가가 사라진 카페나 음식점에도 신은 있어야 한다. 신이 편재(遍在, omnipresent)한다면 교회와 다른 공간 간의 차이는 십자가의 유무와는 상관이 없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과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역임했던 승효상은 교회가 “세상의 욕망으로부터 스스로 추방된 자들의 집”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대건축가 김수근 문하에서 마산 양덕성당(1978)과 경동교회(1981) 설계를 주도했다. 그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이로재를 설립한 뒤에도 돌마루공소(1995), 중곡동 성당(2001) 등을 통해 종교 시설에 대한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 왔다.

교회는 본질만 남은 명료한 공간이어야 하고, 그래서 그 형태는 가장 단순해야 한다고 믿는 승효상에게 가로세로 7.5m 크기의 육면체 형태로 지어진 하양무학로교회는 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심지어 그가 설계한 교회 중 규모(연면적 69㎡)가 가장 작아서 그간 추구해 온 “가난할 줄 아는 사람들의 미학(빈자의 미학)”과 맥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톺아보면 하양무학로교회만큼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 내는 교회도 없다.

지붕이 없는 기도실에서 십자가를 완성하는 건 기도하는 자의 몫이다.

승효상이 설계한 종교 시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영성(靈性)’과 ‘공동체’다. 특히 ‘공동체’는 모든 종교가 추구해 온 가치이기도 하다. ‘종교’를 뜻하는 ‘Religion’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Religio’에도 개인의 신앙을 넘어 공동체 형성과 유지를 위한 신앙의 역할이 포함돼 있다.

하양무학로교회에서 승효상은 묵상과 기도를 위한 새로운 예배당과 함께 마을공동체를 위한 야외 예배당도 만들었다. 새로운 예배당이 지어지기 전 하양무학로교회는 각기 다른 시기에 지어진 네 개의 건물이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교회 사무실, 식당, 옛 예배당, 그리고 야외 예배당 자리에 있었던 하양지역아동센터가 서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치돼 있었다. 교회 바깥에서 안마당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대지 남쪽을 지나는 골목을 이용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무학로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교회를 인지시키는 건 옛 예배당과 지역아동센터였다.

설계자는 새로운 예배당을 무학로에서 봤을 때 가장 안쪽 자리인 대지 남쪽에 배치했다. 야외 예배당의 배경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십자가를 설치하지 않았고 창문도 내지 않았다. 반면, 무학로와 골목이 만나는 지점에 조성된 야외 예배당은 모서리에 심어진 느티나무와 함께 외부인에게 교회를 인지시키는 새로운 수단이다. 동네 주민들은 마치 정자나무 아래에 평상처럼 그늘 밑 의자에 앉아 쉬었다 간다.

야외 예배당이 채워 주지 못하는, 동네 주민들 간의 편안한 만남과 교류의 장소는 건너편 ‘다방 물볕’이 제공한다. 다방 물볕은 교회 신도인 황영례 장로가 은퇴 후 차린 복합문화공간이다. 건축가 승지후는 아버지가 설계한 교회를 경관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보완할 수 있도록 외관은 튀지 않고 높이는 낮게 하지만 건물 안에 공간은 다양하게 구성했다. 승효상은 교회가 있는 동네 이름인 하양(河陽)을 순우리말로 바꾼 ‘물볕’을 건물 이름에 붙여주었다. ‘물볕’은 “물이 내린 햇빛” 또는 “강가에 햇볕이 잘 드는 동네”를 의미한다.

하양무학로교회의 새로운 얼굴이 된 느티나무는 조계종 은해사의 돈관 주지 스님이 보시한 기념식수다. 은해사뿐만 아니라 영천 대각사 묘청 스님의 시주, 대구 벽돌회사가 기부한 벽돌 10만장, 30여명에 불과한 신자들이 낸 건축 헌금이 모여 새로운 예배당이 지어질 수 있었다. 건축가 승효상도 그 의미를 알기에 웬만한 교회의 설계비도 안 되는 금액으로 새로운 예배당을 지어 달라는 조원경 목사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예배당의 준공식은 스님과 신부님이 참석한 종교 대통합 행사이자 마을의 큰 잔치였다고 한다.

다방 물볕은 하양무학로교회가 제공해 주지 못하는 공동체 시설을 대신하고 있다.

새로운 예배당이 들어서면서 마당의 크기는 작아졌다. 하지만 네 건물을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은 더 강해졌다. 오래전부터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는 이제 마을을 지키는 우주목(cosmic tree)이 되었다. 우주목은 다양한 문화권의 신화와 종교에 등장하는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상징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우주목에서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다양한 관계 속에 있는 내가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그래서 물을 건너고 하늘을 바라보며 걷다 예배당으로 들어서기 직전 동네를 흘긋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들어선 예배당 안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건 고요함이다.

강단과 십자가를 비추는 빛 외에 예배당을 채우고 있는 건 어둠뿐이다. 어두운 침묵 속에서 발소리, 숨소리를 내는 것마저 조심스럽다. 용기를 내어 예배당 가운데에 앉아 하나의 재료로 만들어진 설교대와 야곱의 사다리를 상징한다는 원기둥, 그리고 이를 비추는 빛을 바라본다. 잠시 후 생각이 나의 마음으로 향한다. 성찰(省察)의 시작이다.

예배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둠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옥상으로 향하자. 예배당 입구 옆에 다소 높은 계단을 오르면 오로지 하늘로 향한 기도실이 나온다. 신자들은 이곳에서 십자가의 아랫부분을 마주한다. 미완의 윗부분을 완성하는 건 기도하는 자의 몫이다. 기도실을 나와 계단 반대편으로 나가면 교회 주변의 마을 풍경이 나를 둘러싼다. 안마당으로 들어오기 전에 봤던 마을의 모습이지만 예배당과 기도실을 지나왔기에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어떤 대담에서 승효상은 한 건물의 아름다움보다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삶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양무학로교회에 적용해 보면 신은 모든 곳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 있고 그 안에서 생기는 이야기로 증언되는 존재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