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강정책 개정안을 공개하면서 미국 새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윤곽이 드러났다. 민주당, 공화당 모두 북한의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공통점이라면, 민주당은 한국과의 동맹 유지 및 강화하는 데 방점을 찍고 공화당은 미국 우선주의 외교 노선을 밝히며 동맹의 책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차이점이다.
민주당은 18일(현지시간) 공개한 92쪽 분량의 정강정책에서 2020년 정강정책에 포함됐던 “우리는 (북한) 비핵화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이고 협력적인 외교 캠페인을 구축할 것”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2020년 정강정책에 포함된 북한과 외교,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도 빠졌다. 공화당 역시 지난달 발표한 정강정책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를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향후 미국의 북한 비핵화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의 등에 일절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을 반영했다는 평가도 가능하지만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북한학)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2020년에는 민주당도 공화당도 명시했던 비핵화 얘기가 이번에는 양쪽 다 없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 신경 쓰일 수밖에 없고 그냥 흘려볼 수 없다”며 “문서화된 것이자 핵심을 담는 정강정책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의 대비책으로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내년 초쯤에는 북한 내부 사정이 안 좋기 때문에 뭔가 담판 지으러 나올 가능성이 있어 그때를 대비해 여러 카드를 손에 쥐어야 한다”며 “해리스가 대통령이 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중장기적으로 비핵화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으로, 아마 지금은 북핵 위협 대응이 더 우선 과제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비핵화 포기는 아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은 정강정책에서 한국(South Korea)을 7번, 북한(North Korea)을 6번, 한반도(Korean Peninsula)를 1번 언급하며 한반도에 대한 외교 정책을 비교적 자세하고 분명히 밝혔다. 공화당이 지난달 8일 공개한 정강정책이 16쪽 분량으로 분량이 적긴 하지만 한국이나 북한, 한반도에 대해서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은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 내용을 담은 ‘워싱턴 선언’과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한 3국 협력 등을 외교 성과로 적시하고 향후 협력 강화 방침을 밝혔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북미유럽연구부)는 “민주당 정강에 비핵화 언급이 빠진 것은 북핵 원칙이 오히려 더 명확해진 것”이라며 “4년 동안 비핵화에 진전이 하나도 없었고, 북한의 선제적 의지 표명이 없는 한 미국이 먼저 나서서 대화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당 정강정책은 미국 우선주의 외교 정책을 예고하는 데 집중했다. 정강정책 가운데 외교 정책을 담은 ‘힘을 통한 평화’ 챕터에서 첫 번째 조항으로 “공화당은 가장 핵심적인 미국의 이익에 중점을 둔 외교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동맹국이 공동 방위에 대한 투자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유럽에서 평화를 복구해 동맹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4월30일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하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한국이 미국을 제대로 대우해주길 바란다”고, 5월12일 뉴저지주 유세에서는 “우리는 (한국에) 4만2000명의 군인이 있고 그들은 우리에게 거의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유세와 인터뷰 등에서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은 민주당과 차별되는 대목이다. 차 센터장은 ‘트럼프표 대북정책’이라는 변수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 “북한 비핵화를 위해 한·미 공동 압박보다는 한국은 한국대로 움직이고, 미국은 북한과 거래를 해보겠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위험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