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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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사망 의대생’ 추모공간 3년째 무단점용

시민 10여명 한강공원 내 설치운영
‘자진철거 요구’ 市 현수막 게시에
“표현의 자유” 항의 민원 빗발쳐
철거 취소訴 항고 등 소송전도

市, 공간 축소 등 소극 태도 일관
행정대집행·변상금 부과 손 놓아
市 “현실적인 어려움 있어” 항변

2021년 한강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이른바 ‘한강 의대생 사망사건’의 고 손정민씨 추모공간이 설치된 지 3년이 지났다. 추모공간 운영진은 사정당국의 판단과 달리 손씨가 살해됐으며, 사건 은폐의 희생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지 관리주체인 서울시는 불법 점용에 따른 변상금조차 부과하지 않은 채 묵과하는 상황이다.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에는 수천만원의 변상금을 청구했던 서울시가 정작 검경 수사로 종결된 사건을 두고는 미온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1일 서울시 미래한강본부에 따르면 2021년 5월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 설치된 손씨 추모공간은 현재까지 최소 10여명의 시민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화분과 손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메모 등이 놓여 있다.

 

고(故) 손정민 씨의 1주기 추모제가 열린 지난 2022년 4월 24일 서울 반포 한강공원. 연합뉴스

이들은 추모공간을 통해 손씨의 사망이 ‘타살’이며, 그가 편파수사와 수사기관이 주도한 사건 은폐의 희생자라고 주장한다. 추모공간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손씨의 실종 당일 함께 술을 마신 친구 A씨를 겨냥해 “A씨가 주장하는 블랙아웃은 사실이 아니다” “손정민, 한강 걸어 들어가지 않았다”는 등 그간 검경의 사망 경위 수사 결과와 상반된 주장이 빼곡하게 게시돼 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올해 1월 A씨에게 ‘범죄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손씨 유족은 경찰이 A씨에 대해 2021년 불송치 결론을 내자 경찰 수사 결과에 이의신청서를 냈고, 이에 검찰이 사건을 송치받아 조사했다.

 

이들이 추모의 공간을 명분으로 점용한 공간은 허가받지 않은 불법시설로 하천법 위반에 해당한다. 해당 법률 제33조는 ‘하천구역 안에서 토지 점용 등의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하천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강은 국토교통부 장관의 위임을 받은 서울시장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시가 추모공간을 방치하는 건 해당 공간 운영진 등 국민 정서를 감안한 우려 때문이다. 앞서 시는 지난해 12월 추모공간 맞은편에 “손씨의 추모 등을 위한 각종 동산(피켓, 사진, 화분 등)에 대한 소유권이 있는 자는 자진 철거해야 하며, 조치가 없는 경우 하천법에 의거 조치할 예정”이라는 취지의 현수막을 게시한 바 있다. 시 관계자는 “현수막을 건 당일에만 추모공간이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며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거친 항의 민원이 30여건 접수됐다”고 설명했다.

 

추모공간 운영진은 시를 상대로 한 소송전도 펼치고 있다. 손씨 사망에 범죄 혐의점이 없다는 경찰 수사 결과에 반발해 재수사 촉구 모임을 이끌면서 추모공간을 관리해 온 B씨는 지난해 추모공간을 철거하려는 시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각하했다. B씨는 항고한 상태다.

 

시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추모공간에 대해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발부하거나 불법 점용에 따른 변상금 부과를 통지하는 대신 운영진과 공간 축소 협의만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시 관계자는 “계고장을 보내거나 변상금을 부과하려면 특정한 협의체나 단체가 있어야 행정처리가 용이한데, 하나의 단체에서 공간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수십명의 사람이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추모공간 규모를 축소하도록 운영진과 협의했다”고 해명했다.

 

앞서 시는 시청광장에 설치됐던 10·29 이태원참사 합동분향소에 분향소를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보낸 뒤 수천만원 규모의 변상금 납부 고지서를 통지한 바 있다. 서울시의회도 시의회 본관 앞에 설치된 4·16세월호참사 기억공간 철거를 요청하는 계고장을 발부하는 한편, 7000여만원 규모의 변상금을 책정했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