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농지 대신 컴퓨터와 씨름하는 우리는 사람(기업)과 로컬(지역)을 연결해 주는 로컬벤처입니다.”
인구·지역소멸 고위험지역인 전남 곡성군에 위치한 사회적경제 기업 ‘팜앤디협동조합’. 비농업 분야에서 프로젝트를 만들고 비즈니스를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는 목표 아래 2018년 설립됐다. 이달 19일 방문한 곡성 기차마을 인근 6070청춘공작소 2층 팜앤디협동조합 사무실에는 컴퓨터가 켜진 책상 앞에 3명의 여직원이 자신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느 시골마을의 귀농·귀촌한 모습이나 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총괄 기획과 기획, 디자인 담당 여직원 등 6명이 근무하는 팜앤디는 8년 전 곡성으로 귀촌한 서동선(33)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광주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던 서 대표와 곡성군 인연은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외롭게 2년간 생활했던 게 전부였다. 그는 이곳에서 1년 정도 준비 작업 끝에 대학 동문 4명과 팜앤디를 설립했다. 서 대표는 “호주에서 농업회사에 다닐 때 생육과 인력관리를 담당하면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농업경영에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농촌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함께 살아보고 싶다는 게 미래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팜앤디 사업은 크게 정보기술(IT) 분야와 정부 정책사업의 하나인 농촌 소외지역 등 2개 분야로 나뉜다. 서 대표는 귀촌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맞닿아 있는 농촌 소외지역 인구이동에 더 관심을 갖고 주력해 왔다. 귀촌한 이들이 중간에 다시 도시로 ‘U턴’하지 않고 계속해 지역에 정착해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창업을 뛰어넘어 ‘창직’(새로운 직종을 만드는 활동) 단계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팜앤디가 3년 전 주력했던 사업은 ‘청춘작당’이다. 2030 대도시 청년을 대상으로 시즌제로 기획·운영한 ‘곡성에서 100일 살기’이다. 당시 1기수당 30명 모집에 250명이 지원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3기까지 마무리된 이 사업은 총 90명의 참여자 중 46%(45명)가 곡성에 정착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춘작당 일부 참가자 중 정착에 한계를 직관한 서 대표는 한때 부침을 겪기도 했다. 그는 “지역에 일자리센터가 없어 정착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창업을 하고 싶어도 도움을 주지 못한 데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곤 했다”며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홈커밍데이 행사에서 한 명도 빠짐없이 그들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팜앤디의 연간 매출은 5억원 정도다. 이 중 절반 정도는 IT 사업에서, 나머지는 인구정책 용역사업에서 이뤄진다.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러스틱 타운’ 운영이다. 러스틱 타운은 곡성군 소유의 관광숙박시설인 심청 한옥마을로 주요 고객은 워케이션(worcation) 기업이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일을 하면서 휴가를 동시에 즐기는 공간이다.
워크빌리지 형태로 한옥 독채 18가구를 운영하는 이곳은 기업이나 기관에서 사용 후 만족도 조사에서 9.6점(10점 만점)을 받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팜앤디는 곡성군과 함께 진행한 ‘워크빌리지 인(in) 곡성’으로 지난해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혁신 엑스포’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워크빌리지 인 곡성이 지역소멸 위기 대응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서 대표는 “내륙에서 운영되는 워크빌리지로는 손에 꼽힐 만큼 만족도 면에서 높게 평가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장기체류를 원하는 팀을 위한 코리빙(공유주거)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팜앤디는 1단계 청춘작당에 이어 지역에 온전하게 정착하기 위한 후속사업을 진행 중이다. 1단계가 워케이션 형태였다면 2단계는 맞춤형 창업마을이다. 기존에 지역 시장이나 경제, 농업에 연관된 게 아닌 완전 비농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3단계는 기업마을이다. 말 그대로 기업이 마을을 조성하고 임직원들이 상주하는 개념이다. 팜앤디는 폐교된 삼기중학교를 재이용해 기업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서 대표는 “현재 조성 중인 기업마을은 최근 설계가 마무리돼 조만간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35~40명이 살 수 있는 정도의 마을인데 내년에 오픈하면 이미 들어올 몇 개 기업들이 정해져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 기업이 1년 동안 임대로 마을에 입주하면 임직원들이 순환 근무로 2~3개월 아니면 6개월 정도 지역에 내려와 살면서 기업이 정착하는 방식도 자연스레 방향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이런 개념의 마을을 5개 정도 만들면 곡성의 이미지 또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그는 “내년에 동시에 진행할 창업마을과 기업마을의 이미지가 확고해지면 인구유입 문제는 물론 일과 삶의 선순환적 조화를 이루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