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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유치원서 초3 선행학습…‘가구 경제력에 따른 교육 수준차’

유치원, 법 규제 대상 아니어서 제재·감시 한계
사진=세계일보 사진DB

우리나라의 비정상 적인 선행학습이 초등학교를 넘어 유치원에서까지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과도한 선행학습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강남 등에서 이뤄지는데,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력을 좌우한다’는 연구결과를 현실에서 증명하는 모양새다.

 

22일 KBS보도에 따르면 앞서 서울에는 ‘의대 초등반’ 학원이 문을 열었다.

 

해당 학원은 ‘의대 입시 성공은 초등학생 때 결정된다’는 과장된 홍보 문구를 내세웠지만 강남에 사는 엄마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문제의 학원은 지난달 교육당국 합동점검 단속에 걸려 경고를 받았다.

 

의대 진학 열풍 등으로 입시 열기가 초등학교까지 번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행학습은 유치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강남·서초·송파구, 이른바 서울 강남 3구 유치원 103곳의 선행교육 실태조사 결과 74.1%는 자체 영어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초등학교 교과서로 선행 수업을 하는 곳은 10곳으로 집계됐다.

 

영어 특성화 프로그램은 유치원에서 사교육 업체와 계약해 원아들을 대상으로 유료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데, 조사 결과 만 3세부터 5세까지 연령이 높아질수록 영어 특성화 프로그램 참여율도 함께 높아졌다.

 

공교육에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배우도록 하고 있는데 미리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 사립 유치원은 원아들에게 곱셈과 나눗셈, 분수, 국어 품사를 교육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교육 과정에서 분수 등도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때 배우는 내용이다.

 

또 3살 원아들에게 원어민 영어와 유아 한자, 수학을 가르친다고 안내하고 수업 중 초등학교 교과서 문제를 미리 풀어보게 한다는 유치원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모든 만 5세 반은 유치원생이 취학 후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한 '유·초 연계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초 연계 교육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 취지와 달리 사실상 초등학교 선행학습의 구실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 공교육 정상화법은 학원의 과도한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경우 이 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제재와 감시에 한계가 있다.

 

한편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자녀가 4년제 일반대학에 다니는 비중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문턱이 낮아졌다지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는 소득에 따라 다른 게 현실이다.

 

즉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력을 좌우하는 것이다.

 

최수현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작성한 ‘부모의 소득 수준이 자녀의 학력 수준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부모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가정의 만 22세 청년들을 분석한 결과 41%만이 일반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소득이 가장 높은 4분위 가정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68%로, 27%포인트나 더 높았다.

 

분석은 2016년 당시 고2였던 학생 7590명이 만 22세가 된 지난해 추적 조사한 결과다.

 

자녀가 일반대학에 다니는 비중은 4분위는 70%에 육박했으나 3분위는 59%, 2분위는 48%까지 하락했고 1분위에서는 40%대로 더 낮아졌다.

 

반대로 일반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경우는 저소득층이 많았다. 1분위가 35%로 가장 높았고, 2분위와 3분위는 각각 29%와 21%, 4분위는 15%로 가장 낮았다. 전문대학에 다니는 비중은 1분위와 2분위에서 23%로 나타났고, 3분위에선 20%, 4분위에선 17%로 집계됐다.

 

최 부연구위원은 “가구의 경제력에 따른 고등교육 수준에 차이가 관찰되는 것은 개인이 고등교육 진학을 선택하는 데 환경적 제약이 여전히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는 단순히 고등교육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장기적인 계층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