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감정은 왜 중요한가/ 마크 베코프/ 김민경 옮김/ 두시의나무/ 2만4000원
“그들(코끼리)은 주검 주위에 모여들어 죽은 티나(코끼리)의 몸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어느 정도 땅을 파낸 후 그들은 티나의 주검 위에 흙을 뿌렸다.… 주변에 있는 관목 덤불에서 나뭇가지를 꺾어와 주검 위에 놓았다.… 그들은 밤을 지새우며 무덤 곁을 지켰고 동이 틀 무렵에야 마지못해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신시아 모스 ‘코끼리의 기억들’)
“인도의 사비트리 강가에서 떠돌이 개가 한 무리의 야생 개들에게 쫓기다가 강물에 뛰어들었다. 그때 거대한 늪지의 악어 세 마리가 분명히 제 발로 굴러들어온 먹잇감을 쉽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도 주둥이로 개를 물 밖으로 밀어 올려 구해주었다.”(2023년 9월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동물이 연민과 슬픔을 느끼고 죽음을 애도함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인간은 대다수 동물을 감정 없는 기계처럼 대하지만, 동물이 지각능력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는 속속 보고되고 있다.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의 신간 ‘동물의 감정은 왜 중요한가’는 동물이 다양한 감정을 갖고 있음을 논증하며 동물과 인간을 나누는 이원론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은 표정, 눈뿐 아니라 자세, 귀, 꼬리, 걸음걸이, 소리, 체취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동물이 느끼는 감정은 공포, 슬픔, 기쁨뿐 아니라 유머, 창피함, 우쭐댐 등 다양하다.
침팬지나 돌고래, 코끼리, 까치, 물고기 등은 일종의 자기 인식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거울실험을 통과했다. 진화생물학자 마크 하우저는 수컷 붉은털원숭이에게서 창피함이라 부를 만한 행동을 목격했다. 한 수컷 원숭이가 암컷과 짝짓기를 마치고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다 발을 헛디뎌 도랑에 빠졌다. 이 원숭이는 일어나 잽싸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무도 못 봤다 싶었는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등을 꼿꼿이 펴고 고개와 꼬리는 한껏 치켜든 채 다시 당당하게 걸어갔다. 개가 질투심을 느끼면 인간이 이를 느낄 때처럼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됐다. 인간에게 사랑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은 수많은 동물의 뇌에서 발견됐다.
곤충, 어류,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마틸다 기번스 영국 퀸메리대 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논문은 파리, 모기, 바퀴벌레, 흰개미가 고통을 느낀다는 강력한 증거가 존재하며 딱정벌레, 나비, 나방이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을 보이는 상당한 증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어류 전문가 빅토리아 브레이스웨이트는 저서에서 “물고기가 통증을 느끼고 고통을 받는다는 증거가 조류나 포유류에 대한 것만큼이나 많으며, 인간 신생아와 조산아가 느끼는 통증에 대한 증거보다 많다”고 적었다. 일부 학자들은 식물 또한 고통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거나 상처를 입는 경우 우는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제안한다.
동물의 놀이는 인간의 놀이와 유사성이 많다. 동물은 놀이를 할 때 규칙을 이해하고 따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저자는 동물의 놀이가 지속되려면 평등이나 공정성이 요구된다며 “이런 종류의 평등주의는 인간 사회에서 발달한 도덕성의 진화적 전제 조건이라 볼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
동물이 감정을 느낀다 해서 ‘인간만큼’ 우월하다고 여기는 태도는 잘못됐다. 저자는 “종의 우열을 구분할 수 있고 지각 능력의 정도에도 우열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결국 쥐, 조류, 어류, 무척추동물과 같은 특정 종에게 가하는 부당한 대우 및 학대를, 개나 돌고래 같은 매력적인 포유류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을 향한 존중을 정당화한다”고 꼬집는다.
책은 동물복지가 아닌 ‘동물 웰빙’을 주장한다. 동물복지는 모피 동물 사육장의 밍크가 더 큰 우리를 선호하는지 따진다. 반면 동물 웰빙은 밍크가 사육장의 쇠창살에 갇혀야 한다는 발상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동물 웰빙은 각 개체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방식이다.
동물을 대할 때는 언어도 중요하다. 저자는 “사람이 육류에 대해 말할 때 식탁에 ‘무엇’을 올릴 것인지가 아닌 ‘누구’를 올릴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와 제인 구달은 동물을 가리킬 때 ‘그것’ ‘어떤 것’보다 ‘그’ ‘그녀’ ‘그들’ 같은 표현을 쓴다. 대다수 나라에서 법적으로 인간만이 살해될 수 있다고 규정한 것도 종차별이라고 반발한다.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살해라고 하는 대신 ‘희생 ‘제거’ ‘수확’ ‘획득’ 등으로 순화하고, 죽임당하는 동물을 ‘유해 동물’ ‘외래종’으로 규정하는 것도 우리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