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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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1983년 출범한 K리그의 역사가 40년에 달하면서 한국 축구사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축적되었다. 이를 반영하듯이 2006년에는 K리그 꼴찌 ‘인천 유나이티드’의 반란기를 다룬 영화 ‘비상’이 개봉했고, K3리그를 제패하고 K리그에 진입할 꿈을 꾸는 서울 시민구단에 관한 ‘서울 유나이티드, 이제 시작이다’(권상준)도 공개되었다. 최근에는 안양FC 서포터스 ‘레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다큐멘터리 ‘수카바티, 극락축구단’도 개봉했다.

 

지역에 연고를 둔 자생적인 팀들의 경기를 제도화하여 리그로 출범시킨 영국이나 여타 유럽 국가들과 달리 한국 프로축구는 기업과 정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태생적 약점을 안고 있다. 3S 정책의 일환이었던 전두환 정권의 스포츠 정책에 의해 출범한 국내 프로축구팀들은 스스로 연고지를 선택하지 못하고 축구협회가 배분한 연고지를 할당받았다.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풀뿌리 축구단이 아니었고 연고지를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니었기에 구단의 연고 의식은 그리 튼실하지 못했다. 이렇듯 앙상하게 출발한 한국 프로축구를 정성껏 가꾼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팬들의 헌신과 열정이었다. 축구 팬들은 열정적인 서포터스 활동으로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을 폭발시켰는데 특히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더불어 서포터스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안양 LG치터스의 서포터스 ‘레드’는 홍염을 앞세운 열광적인 응원으로 유명했다. 그런 팬들에게 소속팀이 단 한 번의 언질도 없이 연고를 안양에서 서울로 옮겼을 때 팬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어땠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선호빈, 나바로 감독)은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영화다.

‘수카바티…’는 한국축구 서포터스의 역사와 축구가 탄생시킨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는 자신들의 팀을 부활시키기 위한 시민들의 간절하고 헌신적인 노력을 그림으로써 긴 여운을 남기는데 축구 공동체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자신들의 일상, 공동체 회복의 열망과 닿아있다. “아주 붉은 것은 이미 보라색이다.”라는 문구는 새롭게 출범한 안양FC 서포터스의 슬로건이다. 안양FC의 상징색은 보라로 바뀌었지만 서포터스는 여전히 레드를 고수하고 있다. 안양FC에 벌어졌던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란다. 기억이 사라지면 존재도 사라진다. 급속한 산업화는 과거 안양의 기억을 흔적없이 지워버렸지만 그 텅 빈 공간에서도 축구장의 열기만큼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현재 안양FC의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선수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서포터스는 선수들이 기댈 마지막 언덕이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가슴속에 승리를 향한 염원이 왜 없을까마는 일상을 회복한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하는 레드에게서는 축구 이상의 특별한 감정이 느껴진다. 팀과 팬 사이에 맺어진 이 끈끈한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근원을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축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아닐까? 우리가 열광하는 것은 무언가에 함께 강렬하게 호흡하고 체험하는 일체감일 것이다. 축구가 주는 그 깊은 연대와 소속감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