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워싱턴 출장에서 낯선 광경을 마주했다. 앤드루스 공군기지 옆 주차장에 늘어선 차들의 내부가 모두 ‘어항’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다. 군사기지라 차량 유리에 필름을 붙이는 ‘틴팅’을 금지하는 규제를 시행하는 것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기지를 벗어나 일반 도로에서 마주친 차들도 마찬가지였다. 운전자의 표정과 손짓이 투명하게 보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마주한 도로 풍경은 미국과 달랐다. 운전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틴팅이 기본 옵션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운전자들 간의 수신호도 서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자동차 동호회를 찾아보니 차량을 처음 구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틴팅 시공과 관련한 질문에 답변은 하나같이 ‘국민농도’라며 ‘전면 유리 가시광선 투과율 30%, 옆면 유리 15%’를 추천하고 있었다.
짙은 틴팅은 불법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차량의 앞면 창유리는 가시광선 투과율 70% 이상, 운전석 좌우 옆면 창유리는 40%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필름 제거 명령과 함께 과태료 2만원이 부과된다. 그러나 주변에서 아직 이 규정을 위반해 적발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문화된 규정이기 때문이다.
운전자들이 짙은 틴팅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사생활 보호나 햇빛 차단 등 저마다의 이유를 든다. 그러나 차량에 ‘사고 시 어린이 등 탑승객을 구조해 달라’는 스티커를 붙여 놓고도 정작 짙은 틴팅으로 차량 내부가 보이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목격하고 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짙은 틴팅은 결과적으로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야간이나 지하주차장처럼 조도가 낮은 환경에서 시야가 제한되면 교통사고 위험이 증가한다. 또한 도로에서 운전자 간에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도 뒤따른다.
현행 틴팅 규정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보다 낮은 투과율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반론이다. 다만 이러한 주장만으로 만연한 짙은 틴팅을 옹호하기는 논거가 부족하다. 자동차 동호회에서조차 지하주차장에서 옆 차량이 잘 보이지 않아 창문을 내린다는 이야기부터 가로등이 부족한 도로나 비 오는 날 주행 시 어두워서 불편하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도로교통법과 자동차안전기준 간의 규정 통일이 시급하다. 현재 도로교통법은 전면 70%, 측면 40%의 투과율을 요구하지만, 자동차안전기준에서는 전면뿐 아니라 측면도 모두 투과율 70%로 규정하고 있다.
계도와 단속도 강화해야 한다. 우선 제작사와 운전자 등이 수긍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이어 제작사, 수입사와 협력해 법적 기준에 맞는 틴팅을 홍보하고, 불법 틴팅을 조장하는 업체들에 대한 단속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운전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안전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불법 틴팅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틴팅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미국에서조차 운전석이 공개 공간인 이유는 안전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