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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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의쉼표] 올해 8월18일도 지나고

며칠 전에 8월18일이 있었다. 그야 17일도 있고 19일도 있었는데 콕 집어 18일을 언급하는 까닭은, 황당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노스트라다무스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그의 예언을 다룬 책 ‘지구 최후의 날’을 읽은 후 나는 1999년 8월18일에 정말 지구가 멸망하리라 철석같이 믿었다. 한 해 두 해 나이 먹어가면서 에이 설마 하는 의심도 덩달아 커졌지만 반신과 반의가 옥신각신하는 와중에도 그날을 기다리는 마음만은 한결같았다.

 

마침내 도래한 1999년 8월18일. 나는 대학 졸업반이었고 때는 여름방학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세상이 아직 멀쩡했다. 하는 수 없이 평소대로 버스를 타고 종로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두 시간 후 아르바이트가 끝났을 때도 세상은 건재했다. 종말 직전의 세상을 낱낱이 눈에 담을 겸 자취방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제1면에 전날 터키에서 일어난 지진 관련 기사를 실은 일간지들이 꽂힌 종각역 신문 가판대를 지나, 농아원의 재단 비리와 인권 유린 사태를 규탄하며 탑골공원 앞에서 가두 행진을 하는 시위대를 지나, 삼복 더위에도 뜨거운 김이 펄펄 솟는 계란빵을 파는 아주머니와 오토바이 뒷좌석에 짐을 당신 키보다 높이 적재하고 있는 아저씨를 지나, 모든 화분을 2000원에 파는 화훼 노점이 늘어선 동대문 시장에서 행운목 화분을 하나 산 다음 계속 걸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세상의 종말 당일 같은 풍경은 없었다.

 

두 시간쯤 걸은 끝에 자취방이 있는 안암동에 이르렀다. 편의점 앞에 내가 호출기 음성 메시지를 확인할 때마다 애용하던 공중전화가 있었다. 그 전화기 위에 행운목 화분을 올려놓고 당시 짝사랑하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구가 멸망하는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었던, 그에게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전화는 지구 멸망 타령만 하다가 싱겁게 끝났다. 세상에, 너는 어떻게 아직도 그런 걸 믿어? 그는 통화하는 내내 실소했고 그 하루 동안 나의 행적을 참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평했다.

 

그때는 내가 그로부터 5년 후에 소설가로 등단할 줄, 시간이 더 흐른 다음 정말 그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장장 25년이 지나도록 8월18일만 되면 문득 지구 멸망을 두려워하면서도 기다렸던,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면서도 실망했던 오래전 그날을 회상하게 되리라는 것 또한.

 

김미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