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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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원내 교섭단체 요건 완화

온갖 편법이 횡행하는 곳이 한국 정치권이지만, 국회 원내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벌어지는 촌극만큼 황당한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교섭단체 구성은 군소 정당에 더없이 절박한 현안이기에 안면 몰수하고 덤빈다.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교섭단체 요건을 원내 의석 20석 이상에서 10석 이상으로 완화하는 개정안이었다. 16대 총선에서 17석을 얻는 데 그친 공동정권 파트너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이만섭 당시 국회의장의 거부로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그래서 동원한 꼼수가 한국 정치사에 최악의 오점으로 기록된 ‘의원 꿔주기’다. 먼저 3명의 민주당 의원이 자민련으로 이적한다. 그러나 자민련 강창희 의원이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필요한 서명 날인을 거부했다. 이에 자민련은 강 의원을 제명했고, 다시 민주당 장재식 의원이 추가로 이적해 교섭단체 구성 요건인 20석을 채웠다. 전혀 이질적인 군소 정당이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손을 잡기도 한다. 이렇게 등장한 게 2008년 제18대 국회의 ‘선진과 창조의 모임’(자유선진당 18석, 창조한국당 2석), 2018년 제20대 국회의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 등이다.

군소 정당이 죽기 살기로 교섭단체 구성에 매달리는 것은 우리 국회가 철저히 교섭단체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비교섭단체는 의사일정 조정, 대정부 긴급 현안질문, 상임위원장 할당 등에서 모두 배제된다. 또 교섭단체가 되어야 국고보조금이 큰 폭으로 늘어난다.

4·10 총선에서 비례의석 12석에 그친 조국혁신당이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10석으로 낮추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특히 대여 투쟁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더불어민주당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조국 대표 요구에 즉답을 피하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조국혁신당의 위상이 높아지면 대권가도에서 조 대표가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을 것이다. 당장 10월 재보선에서도 두 당은 비슷한 성향의 표밭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조국혁신당의 숙원이 이뤄지기는 아무래도 힘들어 보인다.


박창억 논설위원